▲ 이국성 변호사 /기호일보 독자위원장

 밝은 임금은 구차한 상이 없고, 벌을 용서하는 일이 없다. 상을 구차하게 주면 공신이 그 일을 게을리하고, 벌을 용서하면 간신이 비행을 저지르기 쉽다. 그런 까닭에 진실로 공이 있으면 비록 소원하고 천한 자일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하고,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비록 친근하고 사랑하는 자일지라도 반드시 주책하여야 한다.

법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궤도로 삼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을 이 궤도 안에 몰아 넣어 탈선하는 일이 없게 하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 지는 것이다. (최태응의 한비자 [주도편], [유도편])

지금 온 나라는 국정원의 간첩 사건에 대한 증거 조작 사건으로 온통 난리다. 누구의 말대로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닐 정도이다. 심지어 국정원의 인간 정보원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되어 온 사람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서 국정원을 엄히 훈계하는 듯한 유서까지 남기고 자살을 시도한 사건마저 발생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 사람은 국정원으로부터 수고비를 받고 서류를 위조하여 국정원에 건네 주었고, 국정원은 이 서류를 검찰에 제출하여 검찰공판부에서 이 서류들을 항소심 재판부에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였다고 한다.

지난 2월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3년 만에 재심을 통하여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 씨의 유서대필 사건도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증거 조작으로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1991년 당시 집권 세력은 실정에 항의하던 학생, 노동자,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공안기관들은 사회단체의 간부가 분신자살을 했는데 자살자와 친구였던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하여 주어 자살을 방조했다는 내용으로 기소하였고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가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되어 강기훈 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그 후 강기훈 씨의 목숨을 건 진실 규명 투쟁 작업이 시작되어 2007년과 2012년에 다시 이루어진 국과수에서의 필적 감정에서는 강기훈 씨가 자살자의 유서를 대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결국 강기훈 씨는 국과수의 허위 감정으로 인하여 친한 친구가 자살을 하는데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유서를 대필하여 자살을 도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죄인이 되었고 그 누명을 벗고 진실을 밝히는 데 2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현재는 암에 걸려 질병과 투쟁을 하고 있는 강기훈 씨의 억울함은 그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실정이지만, 당시 수사와 재판을 담당했던 국가기관의 구성원들은 아무도 그 잘못에 대하여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과거처럼 수사기관들의 위법행위나 일탈행위에 대하여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법률에 의한 국가 통치는 무너지고 나라의 기강이 제대로 설 수가 없게 된다.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기관이 존재한다면 그 법은 이미 죽은 법이고 국가는 이미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기관은 폭력단체와 별 차이가 없다.

당사자인 국정원도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성찰을 철저히 하여야 하고 국법을 위반한 구성원들을 엄히 처벌하는 진실성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향후 국정원을 어떤 모습으로 개선하여 사건 재발을 방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북정보라는 변명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로는 상실된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더 큰 국민의 회초리를 맞을 것이다.

과거 2천400여 전의 한비자의 주장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기관은 그 중요성을 떠나서 한시라도 법치라는 궤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법으로 만든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그 열차는 탈선을 한 것이고 승객은 모두 사망할 수밖에 없다. 승객을 안전하게 모실 책임 있는 열차의 승무원들은 이 사실을 단 1분, 1초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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