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을 기점으로 국내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해 흥행신기록을 세운 뮤지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디즈니사의 부활을 알렸다. 작품만큼이나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 ‘Let it go’를 비롯해 음반과 캐릭터, 출판산업과 주인공 엘사풍의 메이크업이라는 뷰티산업까지 ‘겨울왕국’은 모든 유행과 화제의 중심에 서며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인기의 비결에는 전통의 디즈니사가 창조해 낸 아름다운 영상미와 공주의 사랑이야기라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붙잡는 불멸의 스토리 코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위 디즈니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에는 동심뿐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에도 커다란 울림을 주는 다양한 코드들이 있다.

간략한 스토리 라인을 살펴보면, 아렌델 왕국의 두 공주인 안나와 엘사는 사이좋은 자매이자 서로에게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언니 엘사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법으로 눈과 얼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몰랐던 엘사는 동생과의 놀이 도중 실수로 큰 부상을 입히게 되고, 이에 왕과 왕비는 큰딸 엘사에게 마법의 능력을 감추고 평범하게 살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그 마법이 사라질 때까지 철저히 격리시킨다. 이후 엘사의 방문은 굳게 닫히고 안나는 언니가 왜 갇혀 지내는지, 그리고 언니가 자신을 왜 피하는지도 모른 채 언니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세월이 흐르고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 엘사의 성인식에 맞춰 여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그리고 마침내 엘사의 방문과 성문도 활짝 열린다.

안나 또한 성 안에 갇힌 생활만 하던 중 개방된 성문을 통해 드디어 외부와 접촉하게 된다. 오랜 외로움 끝에 펼쳐진 세상 속에서 안나는 태양보다 밝게 빛나는 멋진 왕자님을 운명처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이를 언니에게 전하는 도중 자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 다툼으로 꽁꽁 감춰 왔던 엘사의 마법은 갑작스레 풀리게 되고, 마술의 능력은 조절되지 못해 전 왕국을 얼려 버리고 만다. 마법을 휘두르는 엘사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악한 마녀로 비춰지게 되고, 결국 엘사는 성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에 동생 안나는 따뜻했던 왕국의 날씨와 언니를 되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여느 동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난관을 극복해 행복한 결말을 맺은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기존의 디즈니 작품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기존의 디즈니 세계관이 이 애니메이션에도 투영됐다면 엘사는 저주에 걸린 모습에 다름아니며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백마 탄 왕자님의 키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왕국’은 자신들이 과거에 구축한, 그로 인해 디즈니 왕국을 건설하게 해 준 동인이 됐던 이른바 ‘신데렐라 신드롬’을 벗어던진다.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이긴다’는 주제는 이어가되 그 핵심을 진정한 자아 찾기와 가족의 사랑으로 옮겨 놓는다.

이는 공주님은 오직 왕자님의 사랑만으로 깨어날 수 있다는 그간의 전달 방식을 크게 탈피한 모습으로 요즘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엘사의 특별한 능력은 저주 혹은 사악한 힘이 아닌 타인과 다른 자신의 본모습으로 그려낸 점 또한 훌륭하다. 비록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본의 아닌 피해를 주고 또 상처를 받을 것이 두려웠던 엘사의 부모님은 그 재능을 상쇄시키고자 아이를 세상과 격리해 폐쇄적으로 키웠지만, 오히려 그 과잉보호는 이후 엘사의 자아형성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인이 돼 버린다.

 그러나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자신의 본모습을 깨달은 엘사는 ‘Let it go’를 통해 본심을 털어낸다. ‘숨겨야 했고 감춰야 했던 것, 하지만 이제 틀린 것도 없고 규칙도 없이 나는 자유로워. 완벽한 숙녀의 모습 따위는 없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 울지 않아. 나의 한계를 넘을거야.’ 이런 엘사의 외침은 비단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에 국한되지 않고 진정한 자아 찾기가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되고 울림을 준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을 언제나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의 사랑이야말로 결국 모든 힘의 원천임을 ‘겨울왕국’은 전하고 있다. 바로 그 점이 남녀노소를 비롯한 전 세대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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