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문학은 비극의 시대였다. 정치, 철학,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가 풍부하게 꽃피웠던 시절, 그리스는 비극을 노래했다. 그리스 비극의 구성은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려는 인물의 수난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결말은 결국 예정된 비극을 향해 파멸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어째서 모든 학문과 문화예술이 융성했던 황금시기에 이들은 비극을 노래하며 찬양했을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스 비극의 목적은 자기 성찰에 있었다.

 자신의 친부를 해치고 친모를 아내로 삼게 될 거라는 끔찍한 예언에 맞서 싸운 오이디푸스, 국가의 반역자로 내몰려 비참한 죽음을 당한 한 남성에 대해 그 시신의 장례를 치러 주는 자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국왕의 엄명에 불구하고 고민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 안티고네 등이 잘 알려진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패륜에 가까운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오이디푸스의 의지도, 국왕의 명령과 천륜 사이에서 고뇌하던 안티고네의 고통도 결국 슬프고도 비참한 최후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 슬픔의 정점에서 비극을 접하는 관객들은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인물의 영웅적 행동을 보게 된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파멸도 두려워하지 않는 숭고한 정신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비극을 통한 자아 성찰, 바로 이것이 비극 작품 궁극의 목적이자 당시 고대 그리스가 국가적으로 비극 장르를 장려한 배경이라 하겠다.

다소 장황하리만치 그리스 비극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오늘 소개할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일면 그와는 대척점에 선 작품이기 때문이다. 1975년 유신시대에 발표된 이 영화는 문화적으로는 분명 비극의 시대에 탄생한 희극성향의 작품이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의 큰 성공 이후 최인호 작가의 차기 작 「바보들의 행진」 또한 동명 영화로 발표되며 이전보다 더 큰 반향을 모았다. 이 작품은 군 입대를 앞둔 20대 대학생 병태와 영철의 불안한 청춘을 그리고 있다.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가 넘쳐 흐르는 작품이지만 당시 시대가 주는 불안 그리고 20대 청춘이기에 피해 갈 수 없는 우울한 정서가 영화 곳곳에 배어 있다.

이들이 모여서 할 일 이라고는 술 마시고 춤을 추고 노는 것뿐이다. 공부, 연애,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봐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을 뿐, 청춘의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다. 술에 취할 때마다 영철은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고래잡이를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느 날, 영철은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서 동해바다를 향해 힘찬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병태는 언젠가는 찾아올 ‘우리들의 시대’에 대한 불확신 속에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모든 것인 입영을 선택한다.

소위 말하는 ‘건전문화’ 정착을 위해 당시의 문화예술은 건전문화를 선도하는 시대상을 모순적이게도 담아낼 수 없었다. 그 시대는 건전문화 정착을 위해 과도한 통제와 검열 속에 문화예술은 통제를 통제라, 검열을 검열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현실에 없는 현실을 그리며 바보 같은 걸음만을 내디딜 뿐이었다. 비록 현실의 완전한 반영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여러모로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힘은 1975년 개봉 이후 40여 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앞서 언급한 그리스 비극과는 달리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청춘의 활기와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래서 비극보다는 희극 장르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하길종 감독이 발휘한 작가적 역량으로 인해 청춘의 좌절과 고뇌는 희극적 색채 안에서도 그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시대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는 비단 그 시대뿐만이 아닌 2014년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시대도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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