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식 ㈔인천시서구발전협의회 회장

 양심(良心)이란 백과사전에는 도덕적 행위 또는 선악(善惡)에 관한 전인격적 의식 또는 심정이라 하고, 중세철학에서는 선(善)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악(惡)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생득적(生得的) 능력의 총괄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양심에 비춰 보라.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 양심에 호소한다는 등의 양심 타령을 자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도덕적 사고(思考)의 실종과 가치관의 혼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양심이라는 마지막 보루를 잃고 살아가고 있다.

5천 년 이상 유태민족을 이끌어 온 정치적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책 「탈무드」 속에는 유태인의 선생 ‘랍비’에게 두 사람이 찾아가 판결을 요청하는 내용이 눈길을 끌고 있다. 여기서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서 쓰레기장을 샀는데 그 속에서 엄청난 금액 가치의 보물이 나왔다.

그래서 A는 쓰레기장에서 나온 보물을 B에게 돌려주고자 했고 B는 거절해 함께 판결을 구하고자 선생을 찾아갔던 내용이다.

A가 B에게 보물을 돌려줘야 할 이유로 “나는 B에게서 쓰레기장을 샀을 뿐이지 쓰레기 속에 든 보물에 대한 돈은 지불하지 않아 쓰레기 속에 들어있는 보물은 당연히 B의 소유이기 때문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B는 “자기가 A에게 판매한 것은 쓰레기 무더기 전부이니까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던지 그것은 A의 것이기 때문에 돌려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선생 ‘랍비’는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하면서 당신들에게 아들딸들이 있을 것이니 두 사람을 결혼시키고 그들에게 그 보물을 주라는 판결을 해 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양심이라는 마지막 보루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양심의 본바탕은 순수한 것이며 소박하고 순량(純良)한 마음, 그리고 온화하고 선량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양심을 일컬어 인간의 내적 법정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양심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판장이라는 뜻이다. 양심의 가책은 바로 우리 마음속의 재판장에 의한 준엄한 논고요, 심판이고 양심은 인간의 마음속에 청정 작용을 맡은 샘물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탈무드 속의 사람들처럼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양심을 저버린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공장의 오폐수를 몰래 하수도로 방류하는 사람, 또 장애인을 도와주겠다며 국가나 단체로부터 보조금 또는 지원금을 받아 가로채는 사람, 남편과 자식을 두고도 처녀 행세하며 결혼하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하는 사람, 실천에 옮기지도 못할 약속을 선거 때 표(票)만 의식해 선거공약으로 내놓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정치인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버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제 정의와 공의가 무시당하는 사회풍토와 진실·정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불안과 불신이 가득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정부는 정치가 정도에 따르고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풍토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생활양식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 마음부터 새롭게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서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꿈을 꾼다는 것은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인 양심을 지켜나가는 양심운동을 나부터 실천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말이 사라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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