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담은 영화 ‘런치박스’가 오는 4월 10일 국내 관객들을 찾는다.

로테르담영화제 각본상,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관객상 등 8개 국제영화제에서 12개 상을 받은 작품으로실제 인도 뭄바이에서 ‘다바왈라’로 불리는 전문 배달부들에 의해 120년간 지속돼 온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소재로 한 멜로물이다.

매일 아침 인도 뭄바이의 5천여 명의 도시락 배달원들은 부인들이 만든 점심 도시락을 남편 사무실에 배달한다. 중산층의 평범한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 분)는 소원해진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남편에게 배달되는 점심 도시락에 맛있는 요리와 함께 쪽지를 넣는다.

그러나 그녀의 특별한 점심 도시락이 정년퇴임을 앞둔 중년의 외로운 회사원 사잔(이르판 칸)에게 잘못 배달되고 만다.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사잔은 도시락 안에 편지를 써 보내고, 일라도 이에 화답하면서 둘은 기묘한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싹트는 사랑. 이미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모퉁이 구멍가게(1940)’나 이를 리메이크한 노라 에프론 감독의 ‘유브 갓 메일(1988)’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다룬 소재다.

그럼에도 영화 ‘런치박스’가 담는 쓸쓸함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제 죽음을 향해 직진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것 같은 한 남자와 남편의 배신과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린 애 있는 여자의 사랑은 가을바람처럼 소슬하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낙엽처럼 서럽다.

영화는 도시락 속 편지가 러브레터로 변해 가면서 감정의 밀도가 촘촘해진다. 늙어가는 모습이 추레해 여인 앞에 서지 못하는 남자의 자격지심과 겉도는 인간관계에 생의 의지가 마모돼 가는 여자의 헛헛함이 극의 후반부를 채운다. 그리고 그 쓸쓸한 정서는 엔딩에서 정점에 달한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다. 그렇다고 특별히 절절함이 흘러넘치지도, 허세나 과장이 넘치지도 않는다.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영화에 도전하게 된 리데쉬 바트라 감독은 무엇보다 두 남녀에게 찾아오는 작은 변화들을 시시때때로 포착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소통’이 인간이 가진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고, 또한 변화시켜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을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와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 출연해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이르판 칸의 연기도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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