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근래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군, 관광객,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은 38만여 명 수준에 불과해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분류됐는데, 현재는 외국인이 국내 총인구의 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해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화에 편승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예기치 않았던 부정적인 사례나 사건들도 생겨났다. 따라서 외국인 혐오주의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문화를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녹아들게 할 균형 잡힌 외국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문화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요인은 결혼이나 유학, 사업과 취업이민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것이 일제강점기 질곡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연해주와 만주, 그리고 더 멀리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멕시코 등지로 떠났던 우리 민족 이민의 애환과 그 잔상이다.

 언어는 물론, 풍속과 환경 등 모든 것이 전혀 달랐던 타지에서의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끈기와 성실함으로 주변인, 경계인에서 점차 기층사회의 중심부로 정착해 갔던 이민 선조들의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감동의 역사로 남아 있다.

여기에 우리 시대의 다문화공동체를 통해 한 번쯤 되짚어 보게 되는 것이 멕시코 이민이다. 근대 최초의 계약에 의한 하와이 이민이나 만주와 연해주로의 자발적 이주와는 달리 불법적인 송출로 인해 단 한 번의 이민으로 끝났던 암울했던 시대의 아픔을 보여 주는 멕시코 이민은 내년이면 110년을 맞는다.

멕시코 이민은 1904년 영국인 마이어스(John G. Meyers)가 멕시코 농장주들과 동양인 이민을 계약하고 중국과 일본에 가서 이민을 모집하려다가 실패한 후 한국에 와서 대륙식산회사(大陸殖産會社)를 경영하던 일본인(大庭貫一)과 결탁하여 노동이민을 모집함으로써 시작됐다.

서울·인천·개성·평양·진남포·수원 등 6곳에 대리점을 두고, 황성신문 등에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한 ‘농부 모집’의 과대 광고를 내는 등 갖가지 방법을 써 가난한 이민자를 전국 18개 지방에서 1천33명이나 끌어 모았는데 인천 출신도 225명이나 됐다.

이들 이민자는 1905년 4월 4일 인천항에서 일본인 모집인과 통역 권병숙(權丙淑)의 인솔 하에 영국선 일포드호(S.S.Ilford)에 탑승, 40일간의 항해 끝에 5월 중순 멕시코 살리나 크루스(Salina Cruz)에 도착했다. 이민 브로커들이 개입해 단 한 차례에 끝난 대규모의 불법 계약 노동이민이었던 탓에 그들을 맞이한 것은 지상 낙원이 아니라 유카탄의 뜨거운 불볕더위와 난생 보지도 못한 에네켄 밭이었다.

이들 노동이민자는 30여 개의 에네켄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4년간의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 같은 멕시코 한인의 비참한 생활상이 국내에 알려져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민이 금지되기도 했다.

에네켄 농장에서의 한인들은 1909년 5월 4년간의 노동계약이 끝나고 해방이 될 수 있었지만, 멕시코 내란과 혁명의 와중에서 생활은 향상되지 못했고 1921년 멕시코 한인 288명은 다시 쿠바로 재이민을 가기도 했다. 그 후 멕시코 한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인들과의 혼혈이 증가하고, 쿠바로 간 한인 후예들 역시 대부분 원주민과 결혼하면서 동화돼 쿠바의 코레아노가 됐다.

한국이 멕시코와 국교를 수립한 것은 1962년으로 현재 멕시코에는 1905년 이민 간 한인들의 후손 약 5천 가구, 2만여 명과 1970년대 이래 멕시코로 이주한 1만5천여 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국내 유일하게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가진 인천은 2007년 멕시코 메리다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혼혈이 된 이민 후손들과 교류하고 있다.

과거 정치·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등져야 했던 이민 선조들이 있었다면, 현재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의해 형성된 다문화공동체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민 선조들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살펴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재확인해 보는 것이 이 시대 다문화공동체를 이해하는 첩경(捷徑)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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