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유망 산업 중 ‘디지털 세탁소’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해지면서 웹상에 떠도는 개인의 과거 행적을 지우는 일을 전문적으로 대행해 주는 업체가 이 세탁소이다.

 디지털 기반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람 간의 접촉이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쇼핑과 홈쇼핑은 이미 일상화됐으며, 음식 배달도 인터넷 주문 및 스마트폰 앱을 통한 전자주문이 활발하다.

이런 기술 발달 속에 대인기피증과 같은 사회공포증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도 대인기피증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면대면 접촉이 줄어들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현상과는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다양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 기반의 소셜네트워크 환경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력서 제출 시 소셜네트워크 계정도 함께 첨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웹상에 기록된 개인의 흔적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종 블루오션으로 지목된 ‘디지털 세탁소’는 다각도로 봤을 때 의미심장한 느낌을 준다. 오늘 소개 할 영화 ‘고독한 추적’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작품으로 1942년 프랑스의 비시정권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오늘날의 또 다른 자화상과도 같다.

1942년, 파리. 로베르 클라인은 세계 2차대전 중에도 부유하게 살아가는 성공적인 미술품 거래상이다. 그의 재력 뒤에는 당시 전시상황이라는 것이 큰 몫을 차지했는데, 프랑스 내 독일 괴뢰정권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오랜 유품을 헐값에라도 처분해 탈출경비를 마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레인은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값진 예술품들을 싼값에 사들였다. 그러나 가족 대대로 순수 프랑스 혈통임을 의심하지 않고 살았던 클레인의 집 앞에 신문 한 부가 배달되면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유태인 정보지’라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위험한 신문이 배달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유태인이 아니며 신문 구독을 요청한 적도 없음을 해당 신문사와 지역 경찰국에 알리지만, 그날 이후 프랑스인 클레인은 동명이인으로 추정되는 유태인 클레인과의 묘한 중첩을 보이며 나치정권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다. 

조셉 로지 감독의 ‘고독한 추적’은 195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 할리우드를 떠나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감독 자신의 모습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지만 결국 덫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한 개인의 싸움은 1942년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더욱 강렬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인 동명이인의 정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관계의 연결성, 개인의 행동에 대한 부메랑 그리고 거대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공포 등이 감독의 탁월한 연출을 통해 서늘하게 스며들어 있다. 특히 이 모든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사회구조와 개인의 정체성과의 관계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비록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클레인 씨가 겪은 아이덴티티의 왜곡과 정체성을 둘러싼 주변과의 충돌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개인정보의 과다 수집과 불안한 관리체계, 당장 내 일이 아닌 것에 대한 무관심, 불리한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신분 세탁이 만연화되는 오늘의 모습은 조작되고 왜곡되기 쉬운 클레인 씨의 시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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