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극장가 박스오피스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스펙터클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또 다른 쪽에서는 종교적 해석을 앞세우며 화제로 떠오른 작품이 오늘 소개할 영화 ‘노아’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노아와 대홍수에 관련된 부분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성경은 이미 예술의 다방면에 걸쳐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돼 왔고, 그 결과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영화 또한 발명품으로 등장한 19세기 후반 이래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경을 토대로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노아의 방주 스토리 또한 1929년 첫 개봉 이후 다양하게 변주돼 작품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개봉한 작품은 무수한 전작들과 비교해 봤을 때 압도적인 스케일과 더불어 성서 해석에 대한 부분으로 인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익히 잘 알려진 노아와 대홍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인간 세상이 타락한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파멸을 결심하시고 이를 수행할 대리인으로 노아를 선택하신다.

노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커다란 방주를 만든다. 방주 안에는 세상의 모든 동물 암수 한 쌍과 노아의 세 아들인 셈·함·야벳과 그들의 아내인 세 며느리도 함께 승선한다.

이후 40일간 비는 밤낮 없이 내려 지구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이다. 하지만 2014년 개봉한 영화 ‘노아’는 익히 잘 잘려진 이야기에 영화적 구성을 첨가한다. 그리하여 더욱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재탄생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타락한 인간 세상, 세계의 종말을 결심한 하나님, 주님의 뜻을 따르는 대리인 노아의 구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노아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있어서 영화는 ‘말씀’ 대신 ‘예지몽’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앞으로 펼쳐질 종말의 역사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복음서이다.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씀’이다. 즉, 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르시되’,‘~말씀하시길’ 등의 구절이 곳곳에 존재한다.

창세기 6~8장에 등장하는 주님의 뜻 또한 말씀으로 노아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매체의 특성을 살려 목소리로 전달하지 않고 이미지로 주님의 뜻이 전달됐다. 그것은 노아의 예지몽으로 등장했고 노아는 그 꿈을 따르되 주님의 의중은 자신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수행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일부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은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앞으로 닥칠 종말의 역사만이 노아의 꿈을 통해 보여질 뿐이다.

종말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인간이 설 자리가 있는지 노아는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고뇌는 이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축이 돼 갈등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타락한 세상, 세상을 타락으로 이끈 인간의 사악함, 이제 막 태어난 죄 없는 새 생명, 그 순수한 아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신의 완고함 혹은 무자비함. 신의 뜻을 따르려는 노아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인간의 절규 또한 깊어진다.

이 작품 ‘노아’는 순수한 종교적 잣대로만 보려고 한다면 거북한 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적 해석이 가미됐음을 인정하고 바라본다면 좀 더 폭넓은 시선에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놀라운 스케일이 안겨 주는 영화적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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