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병관 인하대병원 환경보건센터장

 어제 작은 모임에 나갔더니 거기서도 세월호 사건이 주된 화제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이야기는 퇴임하신 지가 오래된 문과계통의 노교수께서 조용히 하시던 말씀이었다. “내 손주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 그랬는지 나는 그 사건이 터진 후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오늘 아침 소아청소년과 의국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모여 있던 전공의들에게 “혹시 이번 사건을 보고 들으며 밤에 잠을 못 이룬 사람이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한 전공의가 “너무도 분해서 잠을 못 잔 날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선생으로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최고의 학문을 한다는 의과대학 교수로서 나는 선배 교수만큼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지도 못했고, 입으로는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모든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사회의 부조리에 한 전공의만큼 분해하지도, 밤새 괴로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며 그냥저냥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꿈도 피워 보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란 수많은 매체에 나와 있는 표현에 옷깃을 여미며 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그리고 내가 그 학생들 나이였을 때 만났던 친구들의 꿈을 되새기며 희생된 학생들이 꿨음직한 꿈을 생각해 보며 ‘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혹시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중학교 때 같이 기차 통학하며 공부만 하던 한 친구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으며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중 풋사랑에 빠졌다. 시를 인용해 쓴 편지를 쉬는 시간이면 교실 앞 화단에서 읽어 주던 그 친구는 성적이 떨어지며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에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언론정보를 전공하고 대기업의 홍보실 책임자로 근무했는데 그런 꿈을 키우던 학생이 이번 참사에도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공부는 잘 못했어도 동료나 후배, 특히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던 한 친구는 자기를 따르던 후배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며 그들의 도우미가 돼 주더니만 월남전에 참전해 동료 전우들보다 앞장서서 수색하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몸이 됐는데, 그런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을 학생이 그 속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것이 서럽다.

산에 가셔서 나무 해 머리에 이고 오시는 힘든 삶 속에 간신히 수업료만 마련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수업료 면제 장학증서를 보내 드리는 것이 효도라며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는 의사가 돼 어머님 고생에 대한 보답을 해 드리겠다는 꿈을 꾸며 공부해 정말 의사가 돼 사회에 봉사했는데, 그런 꿈을 꾸고 있었던 학생이 그 속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메어 온다.

같이 하숙하며 저녁 식사 후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노래했고 영어로 ‘아 목동아’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했던 친구는 음악 선생님이 돼 어린이들의 감성을 살찌우는 꿈을 키웠는데, 이번 희생자 속에도 그런 꿈을 꾸던 학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이제 서로 남의 탓만 하며 손가락질하지 말자. 내 잘못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솔직한 고백 속에, 이 사회는 내가 변한 그만큼만 변한다고 강조하시던 어느 종교계 어른의 말씀에 귀 기울이자.

지난 주말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막내가 올라왔다. 왜 이리 늦게 왔느냐고 하니까 안산에 들렀다고 했다. 라면 몇 상자, 생수 몇 통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국화 한 송이라도 그들 앞에 올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들렀다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아비고 나이 먹었다고 큰소리 쳐 왔지만 이제는 배워야 한다. 젊은이들의 속 깊은 생각에 나이 먹은 이들이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성숙된 생각으로 앞날에 대한 큰 꿈을 꾸다가 피워 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그들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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