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러딘 부인의 사랑’은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래드 히치콕 감독의 1947년 작품으로, 그의 감독 인생중기에 제작됐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싸이코’, ‘새’, ‘현기증’ 등에는 못 미치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 또한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분위기를 충분히 느껴 볼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싸우는 주인공과 그 뒤에 숨겨진 놀라운 반전은 흑백 영화가 주는 빛과 어둠의 대비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히치콕 감독의 숨어 있는 필모그래피, 영화 ‘패러딘 부인의 사랑’을 만나 보자.

저녁 식사 무렵 패러딘 부인은 뜻밖의 경찰 방문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자신의 무죄 증명을 위해 변호사 안소니 킨을 고용한다. 킨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패러딘 부부의 남다른 과거사를 듣게 된다. 노신사 패러딘은 재력가였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다.

그에 반해 젊고 매력적인 패러딘 부인은 남편과 결혼하기 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가난한 소녀였다.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세상이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숱한 가십거리에도 이 부부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남편의 죽음으로 끝내 파국을 맞이하게 되고, 사망 원인이 독극물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게 되면서 패러딘 부인은 유력한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변호사 킨은 남편의 눈이 돼 헌신적으로 사랑한 패러딘 부인의 행적을 입증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사망 원인은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비관과 그에 따른 음독자살일 뿐 부인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변호인 측 입장이었다.

그러나 패러딘 가문의 하인 엔드류가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무죄 입증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부인을 명백한 살인범으로 지목한 하인의 증언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에 그 증언이 거짓임을 밝혀내려는 변호사의 날카로운 심리가 팽팽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의 노력에도 패러딘 부인은 그를 차갑게 대하며 경멸해 마지않는다.

오히려 하인 안드레를 걱정하고 그를 감싸기에 급급한 의뢰인의 태도에 변호사는 혼란에 빠져든다. 한 남성의 죽음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법정공방은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영화 ‘패러딘 부인의 사랑’은 진실을 찾아가는 법정물이자 인물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을 다룬 심리드라마로, 히치콕 감독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누명을 쓴 듯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록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핵심이나 그것이 밝혀지는 과정 등은 대표작에서처럼 치밀한 심리전과 촘촘한 서사의 전개를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사건을 둘러싼 진실과 인물 간의 관계를 포착해 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다양한 각도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여전히 빛나고 있다.

특히 공간 안에 포박된 듯 인물을 감싸고 도는 카메라 워크, 어둠 속에 갇힌 얼굴을 통해 숨겨진 내막이 있음을 암시하는 인물 묘사 및 감정적으로 패러딘 부인에게 완전히 압도돼 버린 변호사의 나약한 속마음 등은 대표작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탁월하게 보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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