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인천의 문화재는 2014년 5월 현재 지정된 것이 254점이다. 문화유산이 숫자로 계량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현재 강화와 옹진군을 포함한 10개의 군·구를 가진 인천광역시의 규모나 3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로 본다면 결코 많은 수치는 아니다.

그동안 인천은 우리나라 경제 부흥과 산업화의 주역으로 자리하면서 어느 도시보다 변화의 부침이 심했던 탓에 선조들의 생활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유물·유적이 부지불식간에 망실되기도 했다.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은 이러한 자료의 축적을 통해서 정립될 수 있기에 그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현재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뜻에서, 2015년 책의 수도를 지향하는 인천으로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천의 문화유산 중 하나가 강화도에 세워졌던 외규장각과 그 자료들이다. 외규장각은 규장각이 창설된 지 6년 후인 1782년(정조 6년) 강화부의 행궁 동쪽에 6칸 규모로 세워졌다. 당시 강화도 행궁지에 설치한 것은 국내의 변란이나 밖으로 외적의 침입에서 안전을 기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규장각의 분소, 외부 서고와 같은 기능을 가진 외규장각은 임금이 쓴 글씨나 시문을 뜻하는 ‘규장(奎章)’이라는 말 그대로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와는 달리 왕실 물품과 어람용(御覽用) 의궤(儀軌) 등 왕실관계의 특별한 가치를 지닌 중요 기록을 보관하는 기관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단순히 역대 국왕의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일뿐만 아니라 당시 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신(戚臣)·환관(宦官)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정치·경제·사회 등의 현실문제 해결이 학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하고 보존·간행하는 데 있었다. 즉, 정조의 개혁정치를 위한 중추기관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학문의 진작은 물론 정조의 친위(親衛)세력 확대에 크게 이바지했는데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에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庶孼)로서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고 있던 자들을 등용해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줬던 것도 정조의 개혁정치와 규장각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외규장각에 봉안됐던 자료의 종류와 수량은 병인양요 전인 1857년 사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옥책(玉冊)·금보(琴譜)·교명(敎命) 등 왕실 물품 25점, 어제(御製)·어필(御筆) 68점, 기타 족자류 6점, 의궤(儀軌) 401종 667책, 의궤 외 서적 606종, 4천400책으로 총 5천166점에 달하고 그 중 서적류가 1천7종 5천67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강화 외규장각에 보관된 의궤는 어람용(御覽用)이라 조선시대 최고의 도서와 예술적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우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군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의 전등사에서 조선군의 맹렬한 저항에 퇴각하면서 은궤상자 19점과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의궤를 비롯한 340책의 서적과 주요 왕실자료를 약탈해 갔다.

그리고 행궁, 관아, 외규장각 건물에 불을 지르고 강화도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외규장각에 남아 있던 5천여 책의 중요자료들이 소실됐는데, 당시 약탈해 간 도서 대부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고 일부는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로부터 145년이 지난 2011년 4월, 4차에 걸쳐 외규장각 의궤 296책이 프랑스로부터 돌아왔다. 1975년 재불학자인 박병선 박사가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기록한 종합보고서인 ‘의궤’의 소재와 목록을 소개하면서 알려진 이후 다각도에서의 노력이 3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인천이 비류의 ‘미추홀’로부터 ‘7대 어향(御鄕)’으로 상징되는 고려시대 두 번째 수도였던 강화도의 ‘고려궁 터’와 조선시대 ‘외규장각’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국가적 공간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의궤가 비록 원래 위치였던 강화도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이 시대 인천의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기억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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