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기호일보 독자위원회 위원장

 짧은 인생을 살면서 부모의 입장에서 겪지 말았으면 하는 소원이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식이 남보다 부족한 것, 자식이 남보다 나쁜 평가를 받는 것, 자식이 남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 자식이 남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약한 것 등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분명 몇 가지는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겪지 않기를 매일 같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자식의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4월 16일에 다시는 겪지 않아야 되는 기가 막힌 참극을 겪고 말았다. 불행을 겪은 수많은 부모들의 심정을 어찌 감히 헤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만은 그 참사의 원인과 관련해 시민운동도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일으킨 장본인 회사가 인천을 주무대로 했고, 수많은 비리와 불법으로 비정상적인 운영을 자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지역의 그 많은 시민단체에서는 실질적인 감시활동이나 사고 예방활동을 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시민단체나 구성원들에게 수사권도 없고 개인 회사의 영업활동까지 관여할 권한이 없음은 잘 알고 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책임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이번 참사를 일으킨 회사와 각종 이익단체의 탐욕적인 불법 유착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서의 제보가 제도적으로 이뤄지지 아니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시민의 일상적인 안전에 관해 시민과 시민운동이 서로 동떨어져 존재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정확히 들어맞는 현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선박의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선박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많은 비리와 위법행위에 대해 시민단체에 제보할 수 있을 정도로 시민운동이 시민들의 실생활에까지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제보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과거의 시민운동은 주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치영역, 통일영역, 복지영역, 환경영역에 집중돼 왔다. 국가 경제의 압축성장 논리에 따라 모두 더 많은 이윤 추구에만 관심을 둘 때, 이에 비례해 급속도로 커져 온 국민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이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특히 인천을 대표하는 많은 수의 시민운동이 정치영역의 문제에는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대중의 안전에 관련한 생활영역의 문제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고 운동의 역량과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과거 일부의 시민운동이 공중이 사용하는 대규모 크기의 극장, 터미널, 지하철, 버스, 연안 교통들에 대해 시민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실태를 조사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안전시설과 안전요원을 확충하고, 안전교육과 훈련을 대폭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자원 부족과 인식 부족으로 포기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 인천 연안여객 운송과 선박에 대한 안전 실태조사가 정밀하게 시행되고 안전을 강화하는 조치가 이뤄지도록 시민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 인천에서 출발한 대형 선박에 의한 대규모 인명 살상을 예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이 든다.

공무원과 유관단체, 협회에 시민의 안전을 맡겨 놓고 그들의 선의의 노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한 최소한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하고 잘못된 것인가는 이번 참사에서 여실히 발견된 것이다.

과거의 비극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받아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공공 안전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 단계 높은 문화의 시민운동이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영역에 안주하는 시민운동으로는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와 유관단체의 구조적인 비리와 위법행위를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안전이 다양한 방법과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는 인천, 이익단체의 검은 악마의 손길로부터 인천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인천, 새로운 인천을 건설하는 운동에 시민운동의 관심과 역량이 모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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