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독일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뮌헨은 1972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다. 독일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뮌헨은 오랜 역사를 지녔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아 이민 가고 싶은 도시의 윗자리로 선정되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은 지역이기도 하다.

 올림픽 기간에 이스라엘 올림픽 선수단을 인질로 팔레스타인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던 ‘검은 9월단’이 인질 전원을 사살했던 기억 때문이다.

지금 뮌헨에서 이방인을 만나는 시민의 표정은 밝다. 거리와 마을은 환하다. 1972년 악몽은 여전하지만 진저리치던 시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남도록, 아니 떠날 이유를 찾지 않도록 시 당국은 정주의식을 높이는 행정을 최우선으로 펼친 데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세계 최고’를 되뇌는 개발은 해결책이 결코 아니었다. 개발업자와 자본이 솔깃해하는 정책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시민들이 행복을 느끼는 행정이었다.

150년 전 운하를 위해 직선으로 깊게 파고 강변을 좁혀 개발했던 이자강을 홍수가 없던 예전의 모습으로 최대한 구불구불 복원하자 모래와 자갈이 넓은 수변공간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알프스가 녹을 때 일상이었던 수해도 사라지거나 미미해졌다. 태양과 지열로 전기를 자급하도록 개발한 신도시에 승용차의 진출입을 억제했다.

 그러자 뒤에 자동차가 없다는 확신을 가진 주민들은 안심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외지인을 환하게 맞는다.

올림픽 주경기장 주변의 넓은 주차장에 나무를 가득 심었다. 나무 그늘 아래 주차하므로 주차 면수가 크게 줄었지만 대중교통이 충분하기에 불만이 없다. 도시가 깨끗해지고 더 조용해지지 않았나. 그 뿐이 아니다. 고풍스러운 아파트 단지가 오래돼 낡아지자 첨단 시설을 두루 갖춘 고층 아파트로 개축한 게 아니었다. 뮌헨에서 모자란 건 텃밭이라는 시민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텃밭을 분양받은 시민들은 뮌헨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인천시내의 큰 사거리에 시민의 숙원이라며 송도신도시와 청량리를 잇는 GTX를 착공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선거 열기가 오르며 유력한 시장 후보도 GTX 또는 KTX 개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교통수단이 인천에 사는 시민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빠른 교통시설이 들어오면 당연히 발전할 것이니 좋지 않겠느냐는 식이지만 막대한 건설비의 인천시 부담과 별도로, 외부의 큰 도시와 쉽게 연결되면 왜 지역이 기뻐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은 생략됐다.

대구와 대전의 시민들이 KTX 개설 이후 행복해졌을까? 대형 병원과 대학은 소외되더니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 KTX를 이용하는 시민은 대구와 대전에 남으려 할까? 이용료가 부담스러워 자주 KTX를 타지 못해 지역에 남는 시민들에게 행복은 증진됐을까? 분명한 건 GTX를 위해 지하 50m 이상을 파내는 토목건설업체보다 그 공사비만큼 복지가 줄어드는 지역이 쪼들린다는 경험일 것이다.

살기 좋든 그렇지 않든, 인천을 떠나지 않으려는 시민이 듣기 싫은 소리는 “돈 벌면 떠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제까지 인천시를 끌어가던 행정은 인천의 정주의식과 거리가 멀었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인천의 오랜 추억과 정서가 남은 배다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생업을 내던지고 산업도로 관통을 막으려 나서야 했던가. 정주의식을 생각했다면 산업도로 관통 따위는 인천시에서 거론할 수 없어야 옳은 게 아닌가.

새벽까지 지지자들의 가슴을 떨리게 한 선거는 끝났다. 인천에 유난히 많은 대형 트럭마다 내놓는 미세먼지로 가슴이 답답한 인천시민은 지역 정서와 무관한 KTX나 GTX가 반가울 리 없다는 점을 당선인은 이해하길 바란다.

반대 주민을 억압하며 운하를 파고, 발전소를 집중시키는 도시에서 어떤 행정이 절실한지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추억 어린 갯벌을 잃어 지구온난화에 이은 풍수해가 심화될 인천의 정주의식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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