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하순으로 접어든 요즘, 장마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 본격적인 장마철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에서 여름의 기운은 습도까지 품으며 한층 강해진다.

장마, 비를 떠올리면 어떤 정서가 가장 먼저 그려질까? 여름의 무더위와 함께 습한 기운은 분명 상쾌함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빗방울은 우리의 감성을 흩트리듯 적셔 준다.

오늘 소개하는 ‘언어의 정원’은 6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장마를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등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2013년에 선보인 ‘언어의 정원’은 비와 함께 스며드는 사랑의 감정을 감독 특유의 세밀한 필체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고등학생 타카오에게 등교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비 오는 날만은 예외였다. 비 내리는 아침이면 그는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내리는 비가 좋았던 소년은 여름의 향기를 진하게 품은 한적한 공원 정자에 앉아 빗속의 낭만을 즐겼다. 타카오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사춘기 감성에 품을 수 있는 벅찬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사춘기 소년과는 다른 마음으로 빗줄기에 마음을 적시는 또 다른 이가 있었다. 20대 후반 직장인으로 보이는 어떤 여인. 그녀도 비 내리는 어느 여름, 그 공원, 그 정자에 있었다. 회사도 결근한 채 태연한 모습으로 혹은 쓸쓸한 모습으로 맥주를 홀짝이던 그녀.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비와 함께 시작됐다.

6월부터 8월까지 비가 오는 날이면 두 사람은 어김없이 그 공원에서 만나 오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두 사람은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이면 비가 내리길 기원하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인 타카오에게 언제까지나 들뜬 설렘으로 남을 것만 같았던 비에 대한 감정은 그해 8월, 장마가 끝나갈 때 즈음 아린 느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그 여인과의 만남이 쌓여 갈수록 비는 슬픔이 되고 눈물이 됐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린다면 그대 여기 있어줄까?”라는 일본의 옛 시집에 나오는 그 시구처럼 비가 오는 날에만 함께할 수 있었던 두 사람. 무더운 여름과 함께 장마가 지나간 세상 속에서도 이들의 만남은 계속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작품 ‘언어의 정원’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감성멜로 작품이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 이전, 누군가를 고독하게 희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한 감독의 의도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약도 없는 누군가를 그리며 언젠가는 꽃피우게 될 사랑의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랑 이전의 고독한 감정은 대기의 바람, 하늘, 공기, 날씨, 계절 등과 조화를 이루며 섬세하게 살아나고 있다.

 특히 제3의 주인공과도 같은 비(雨)의 다양한 모습은 푸른 빛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의 가슴속에도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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