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기호일보 독자위원

 2014년, 잔인했던 4월은 부모와 스승과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감사의 달 5월까지 엉겁결에 삼켜버렸다.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6월도 지방선거로 인해 이런저런 이유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말도 많고 변화도 많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까지 겹치다 보니 정작 현충일과 6·25전쟁일을 맞아 숙연해야 할 6월의 분위기가 자못 혼란스럽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4주년이 됐지만, 6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직접 기억할 수 있는 연령층은 아마도 70~80세 정도 이상이나 돼야 할 듯하다.

또 그보다 뒤인 40~50대는 그래도 반공을 우선으로 하던 시기를 거쳤고, 아침 조회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속에 사뭇 공산주의에 대해 비분강개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6·25전쟁의 전반적 상황을 다 알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6·25전쟁이 일어난 첫날 북한군은 의정부 북쪽까지 진출해 서울로의 공격태세를 갖추게 됐고, 결국 개전 나흘째인 28일 아침에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장악됐다.

그리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김포 방면으로부터 계산동·부평·장수동을 거쳐 남하해 피난했는데, 이를 목격한 부평·남동 등의 인천시민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서둘러 피난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북한군이 인천지역을 점령한 것은 7월 4일로 발발한 지 9일 만이었다.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피난을 간 상태였다.

당시 지중세 인천시장은 나이 50세로 서울시 공익사업국장으로 재직하다가 6월 16일 부임해 왔다. 그리고 9일 후 전쟁이 발발하는데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사태가 급박하니 피란은 각자 행동을 취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피난길에 올랐다. 치안과 행정은 공백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인천을 점령한 북한군은 해광사(海光寺)에 정치보위부를 설치하고 미처 피난하지 못한 우익계 인사들을 체포해 인천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하고 기소한 후 학익동 소년교도소에 이감했다.

인천경찰서 유치장 2층에는 민족진영 인사들 100여 명을 수감했고 인천교도소에는 사상범으로 200여 명의 수감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공백 사태를 수습하다가 잡힌 표양문 등 전 인천시장도 있었다.

이후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려가다가 9·15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이후 전세를 회복하는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유엔군과 국군해병대에 쫓기던 북한군은 인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100여 명의 사상범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인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200여 명은 함포사격으로 인해 전화선이 두절됨에 따라 다행히 학살을 면했다.

그러다가 다시 중공군이 개입해서 1·4후퇴가 있었는데, 인천이 적의 수중에서 벗어나는 것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한 이후였다. 중공군의 개입 이후 아군은 평택-삼척선까지 밀려나게 되는데 보다 효과적인 반격작전을 위해 1951년 2월 10일 오후 6시 만조시간을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D-day로 잡았다.

먼저 인천 외항 일대를 봉쇄하고 그리고 10일 덕적도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 해군과 해병대는 유엔군과 해군의 함포 지원을 받으며 인천기계제작소(현재 만석부두 인근) 앞 부두의 상륙에 성공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전 대원들은 각자 담당한 목표를 제압하고 오후 9시 인천항을 감제할 수 있는 인천기상대 고지를 점령했고, 오후 11시에는 인천시청(현 중구청)까지 점령해 부대 본부를 설치했다. 1·4후퇴 이후 한 달 만에 탈환한 인천은 이후 전후 복구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6·25전쟁은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일 중 최악의 피해를 남겼고, 더구나 외침이 아닌 민족 간의 전쟁이었던 것에 더 큰 아픔이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 한다. 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오랜 세월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공통의 과제가 있다. 6월이 다 가기 전에 선거 결과와 관련돼 온통 이념이나 정치 문제로만 점철된 이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추스르고 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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