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가 쓴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이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선진국들의 자본과 노동 간의 장기적 분배율이 자본 쪽으로 불균등하게 증가해 왔다는 통계적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본 수익에 대한 누진과세를 제안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상식적인 주장 같은데 왜 이처럼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고 있을까?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 침체가 그 배경으로 보인다.

피케티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19세기 사회주의 경제사상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칼 마르크스가 쓴 「자본」을 염두에 두고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부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 같은 일부 서방 언론이 피케티의 통계 작업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대체로 그의 통계 작업 자체와 그 결론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자본수익에 대한 누진과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좌파 정부나 진보적 학자들이 틈나면 제기해 왔던 정책 대안으로 별로 새로운 내용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작금의 ‘피케티 패닉’이 시사하는 바는 21세기 자본주의가 갖는 문제점이 결국 자본과 노동 간의 갈등이라는 고전적인 자본주의의 모순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해결책도 고전적인 대안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세월호 이후 총리 사퇴와 내각의 대대적 개편을 통해 소위 국가개조를 위해 개혁적이고 책임지는 면모를 보이겠다고 약속한 박근혜정부는 안대희·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잇따른 중도 사퇴로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를 다시 기용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진실로 국가개조를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치의 난맥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정치 선진국을 보더라도 요즈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간 정치 후진국이라고 폄하해 온 중국이 오히려 능력 위주의 정치지도자 양성과 선발시스템을 통해 엘리트 중심의 경쟁력 있는 정치제도를 구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에서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아베정권의 퇴행적인 대외 행보를 보면 과연 이 정권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통성을 가진 정권인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세계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가 100년 전처럼 또다시 국가 간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 가장 효율적이고 믿을 만한 제도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 위기는 인류 문명의 위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정치와 경제제도의 양축이 흔들린다면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의 토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안이나 해결책이 있는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19세기 이래 제기돼 왔던 사회주의는 이미 20세기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로 더 이상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이 공인된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아직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세계 각국에서 실행되는 정치제도이지만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선거에 의해 통치자를 선출하는 구미의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그간 정통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은 유일한 정치제도였다.

이 역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커지면서 대안보다는 개선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둘 다 근본적 대안을 찾는 것이 어렵다면 결국 그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완하는 개선책이 필요할 터이다.

앞으로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어려운 과제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해결과 개선의 방향이다.

인류 문명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등의 제도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 이해의 문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탐구, 그 중에서도 동서양의 전통 철학과 사상을 21세기 인간이 처한 새로운 조건에 연결시켜 새로운 철학과 사상의 틀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인간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면과 동시에 인간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를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의 새로운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만들어 내는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때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융합과 창조 연구의 방향일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