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해피아’란 용어가 등장하더니 이어 ‘관피아’가 나타나고, 급기야는 ‘국가개조’가 이 시대의 화두가 돼 버렸다.

참사가 가져온 충격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고 또 그로부터 불거져 나온 일련의 사태들이 기존에 제시해 왔던 대책이나 개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전반적으로 뭔가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오각성의 의미를 강조코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한 취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드러내서 정말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때라고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적폐돼 있는 문제들을 훌훌 털어버리자는 민족적 자존심도 내포돼 있을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 개조(改造)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국운이 쇠해 가던 시기, 을사늑약을 당해 국가의 외교권마저 박탈당하는 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러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 직전에 있었다.

당시 위정자뿐만 아니라 민초들까지 도대체 나라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에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개조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선각자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맺어질 결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항 후 상당 기간 열강의 침입에 대해 완강한 항쟁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국권을 박탈당한 것은 ‘힘’과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일어나기 시작했다.

 1924년 개벽지에 실린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보면 우리 민족의 쇠퇴 원인은 ‘도덕적 타락’에 있다고 지적하며 조선 민족을 도덕적으로 개조하고 민족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무릇 어떤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어떤 다른 관념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때에는 반드시 인심(人心)에 갱신(更新)이라든지, 개혁이라든지, 변천이라든지, 혁명이라든지 하는 관념이 드는 것이지마는 갱신, 개혁, 혁명 하는 관념으로 만족치 못하고 더욱 근본적이요, 더욱 조직적이요, 더욱 전반적·삼투적(渗透的)인 ‘개조라는 관념으로라야’ 비로소 인심이 만족하게 된 것은 실로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하겠다”해서 개조를 그 시대의 과제라 했다. 비록 일제라는 거대 권력에 의해 현실을 수긍하는 친일분자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됐지만….

시대는 달라도 현재 우리 사회는 현 시대에 맞는 ‘반드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틀림없다. 현실은 우리 사회 모두가 원하는 것처럼 공명정대하지도 않고, 오히려 특권층의 존재만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 재계, 관계, 법조계, 군부, 학계 등은 그들만의 리그가 이미 결성돼 있는 듯해서 신귀족주의를 열어가는 듯한 양상이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수록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듯 하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그간 관행처럼 지탱해 왔던 전관예우도 있어야 하고 논공행상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혈연·지연·학연 등의 친소관계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집단 속에 자리잡을 수 있는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자는 얘기이다.

개조라는 말처럼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는 그 뜻이 갖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과는 달리 구호로 끝날 공산이 크다.

수족을 자르는 아픔 없이 개조할 수 없는데, 내가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개조하려는 ‘위인’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해야만 하는 개조는 초월적 권한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과 같고,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개조하는 것은 또 다른 개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글자 그대로 개조가 성공했다는 것은 곧 ‘파쇼’가 등장했다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개조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등을 가릴 것 없이 동일한 목표이자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사안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뭇 기대되기도 하지만, 일과성으로 그치지나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더 큼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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