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 두 나라 간 수교가 체결됐다. 한 달여 후인 9월 27일 중국 베이징공항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수행원 일행을 태운 태극마크를 단 특별기가 착륙했다.

 한국 국가 원수로서는 첫 중국 방문이었다. 필자도 이때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22년 전의 일이다. 때문에 필자에게 있어 이번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국빈방문을 지켜보는 소회는 남달랐다.

시 주석은 지난 3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여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 경제협력, 문화교류 등 양국 간 상호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의 방한으로 한중 양국은 지난 1992년 수교로 우호협력관계를 맺은 이후 지역의 평화와 발전, 세계의 번영을 이루는 데 한층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는 진전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양국의 언론들은 두 정상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은 그만큼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본 것이다. 중국은 “시진핑 환대 파격적”이라고 보도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으며, 특히 한 언론은 “한중 양국이 수교 이래 최고의 시기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한중 양국 간에는 수교 이래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있었고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한중 동반자관계’를 선언했다. 이어 중국에서는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방한해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 의지를 천명하는 등 한중 간 수교의 실질적 진전을 보여 왔다.

경제 규모는 1992년 수교 당시 교역액이 64억 달러이던 것이 20년이 지난 2011년에는 2천206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말 교역량은 2천700억 달러로 42배가 증가했다. 가히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 하겠다.

한반도 평화문제, 경제협력, 문화교류 등 제반사항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는 남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문제다. 필자는 2년 전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여전히 중국은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역사가 굽어보고 있다”고 전제하고,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술돼야 한다. 억지를 부린다고 역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뒤집거나 비켜간 기록은 역사가 아니다. 왜곡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이번 방한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했다. 이 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미덕은 신뢰라는 의미다.

공자는 제자 자공이 정치에 관해 물었을 때 “풍족한 식량(足食), 충분한 군대(足兵), 백성의 믿음(民信)”이라고 말했다. 공자는 이 중에서도 군대와 식량을 다 포기해도 백성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존립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해득실을 따져 손해다 싶으면 오랫동안 쌓아 온 우정도 초개같이 버리곤 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국가 간에 있어서도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이 냉엄한 국제 현실이다.

시 주석은 이번 방한 중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이웃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고 한중 역사 가운데 미담사례를 언급하며 ‘의리(義理)’를 강조했다. 친구 사이에는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 시 주석의 ‘친구와 의리론’을 믿어 본다.

중국 정부가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이 친척집을 다녀온 것과 같았고 두 나라 간 신뢰는 한층 깊어졌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아름다운 문구로 잘 다듬어진 성명, 선언, 협약문이라 하더라도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신뢰다. 국제외교에 있어 신뢰의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요하다.

이번 한중 양국은 김치 수출 문제부터 FTA, 한반도 평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논의를 했다. 이 모든 협약사항들이 실천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 주석은 이번 방한을 앞두고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관작루에 올라’라는 시 “해는 서산에 걸려 넘어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천리 밖을 보려면 다시 누각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하리”의 문장 중 마지막 두 구절을 인용, 양국 관계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르되 신뢰를 바탕으로 올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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