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가 있다. 프랑스어로 ‘검은, 어두운, 우울한’ 등을 뜻하는 이 용어는 필름 누아르라는 장르 내에서 글자 그대로 어둡고 우울한 색채의 영화를 지칭한다.

죽음, 폭력, 권력의 암투, 배신 등의 비관적인 인생관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장르의 작품들은 스타일적인 면에 있어서도 해질녘, 검정색 계열의 의상, 비에 젖은 뒷골목 등의 음습한 배경과 결합해 선과 악, 법과 폭력의 경계에서 공포의 심연을 노출시킨다.

 누아르 장르는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성행했으며, 이후 1980·90년대에는 홍콩 누아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흥행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통 누아르 영화가 뿌리내리기보다는 변종 장르인 조폭물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었다.

누아르 영화의 등장은 해당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전후 시대에 대한 반영으로 1940·50년대의 할리우드 누아르를 꼽아 본다면, 홍콩 누아르는 1997년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불안하고 허무한 홍콩사회를 담아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신세계’는 2013년 2월 개봉된 한국형 누아르 작품이다. 이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2014년 상반기까지 다수의 누아르 영화들이 개봉했다. 누아르 영화의 붐이 그 시대의 불안을 담아내는 방증이라면 영화 ‘신세계’가 구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자.

이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국내 최대 범죄조직인 ‘골드문’에 경찰인 신분을 위장한 채 8년간 잠입수사를 벌이는 이자성과 그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강 과장, 그리고 자신을 친동생처럼 믿으며 챙겨주는 조직의 2인자 정청 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각기 다른 자신들만의 신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음모와 배신, 형제애와 의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잠입경찰 이자성은 자신을 믿지 못하며 한낱 도구로 취급하는 상관의 태도에 불안함을 느끼는 한편,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형제애와 의리를 보여 주는 조직의 2인자를 배신해야만 하는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다.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향해 목숨까지 걸고 나아가는 그들의 세계는 선과 악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종국에 가서는 경찰과 범죄조직 간의 전쟁이 아니라 여러 세력들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정치적 싸움으로 번져간다.

서로의 약점을 잡으며 물고 물리는 가운데 자신의 이득만을 계산하며 움직이는 세력 간의 이동 및 극한의 대립은 권력의 정치적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있다.

필름 누아르 영화가 어둡고 그늘진 인생과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신세계’를 비롯해 최근에 개봉한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등의 잇단 개봉은 의미심장한 측면이 있다.

 천재(天災)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대중문화인 영화를 통해 나타났다고 본다면 이는 지나친 생각일까? 영화 ‘신세계’는 잘 만들어 낸 장르영화임에는 분명하며 명품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 또한 영화를 보는 커다란 재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부정부패, 음모와 배신, 권력을 향한 탐욕스러운 욕망에 대한 공감 대신 따뜻하고 살 만한 세상을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그려낼 수 있는 작품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