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무덥다. 연일 찌는 듯한 고온에다 습기까지 더해 비명이 저절로 나온다. 속대(束帶)를 하지 않고서도 이 지경이니 선비가 되지 못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한마디로 속인이고 소인(小人)이다.

속인이란 학문이 없거나 풍류를 알지 못하고 고상한 맛이 없는 속된 인간이다. 이는 결국 세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데, 그렇다고 전부 다가 속인은 아니다. 학문과 풍류가 있고, 고상한 품위를 가졌으면 그는 속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인, 속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쓸데없는 궁금증과 함께 묻는 일이 많고 분에 넘치게 소원(所願)하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다루기도 상당히 어렵다. 공자도 소인에 대해 그렇게 실토한 바 있다. 물론 논어 원문은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고 돼 있지만, 공자 시대의 이야기이니까 여기서 여자는 제외한다.

잘 알려진 이백(李白)의 시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이 고매한 선비, 즉 신선 같은 사람과 속인의 구별을 보여 준다. 왜 산중에 사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속인에게 이백은 미소로써 부답(不答)의 대답을 한다. 속인이 그 의미를 알았을까?

풍류도 없고 고상한 맛도 없는 속인의 눈에는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이 전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니, 이백의 대자연처럼 한가로운 마음의 미소를 필경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백이 보인 미소의 의미를 알아 다시 이쪽에서 똑같이 미소를 지어 답하려면 적어도 가섭(迦葉)의 만분의 일은 돼야 할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도 속인의 한 행태가 나온다. 길 잃은 무릉의 어부가 마침내 당도한 평화경(平和境)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다. 떠나올 때 그곳 사람들부터 저간의 사정을 발설치 말라는 당부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멋대로 길에 표시를 해 둔다. 그 때문에 그는 다시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어부가 표시를 한 것은 훗날 다시 찾아가리라는 생각에서였겠지만 선경(仙境)은 가고 싶다고 해서 재차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기는 하나 오직 꿈꾸는 곳일 뿐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같은 유토피아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도연명은 인간이 도원에 다시 갈 수 없는 불가능을 어부, 한 속인의 약속 위반행위 때문으로 처리해 버렸다.

이쯤 써 내려오는데도 땀은 비 오듯 한다. 더욱 간편한, 최소의 복장으로 앉아 이번에는 속인들이 가지는 소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여름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새해가 되면 많은 세속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을 발(發)한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못하다. 소원이라는 것도 유토피아처럼 꿈만 꿔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정도라면 어떨까. 여름내 막국수나 냉면, 콩국수 몇 그릇 먹을 수 있다면…. 향내가 적은 중국술 이과두주 한 병, 그리고 며칠 서해 이작도 모래사장을 밟는 것, 거기에 모시적삼 한 벌이 생긴다면 더없는 호사일 것이고, 마구 늘어놓은 서책들을 건사할 책장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들…. 무엇보다 큰아들의 수입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것은 숙원 중의 하나고, 또 한 가지,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서 써 온 습작 몇 편을 단(壇) 앞에 놓고는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던, 나와 함께 여러 해 시 공부를 해 오는 제자가 등단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

이 더위에 막 임기를 시작한 인천시장도 내내 시정의 소리를 바르게 듣고 덕 있는 정사를 펴기를 소원한다.

세속 사람들은 도연명이 그린 평화경, 곧 ‘논밭과 연못이 모두 아름답고, 닭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한가로우며, 남녀가 모두 외계인(外界人)과 같은 옷을 입고 즐겁게’ 사는 것처럼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이 여름날 속인의 소원이라고 되뇌는 동안은 이상하게 더위를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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