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며칠 동안 구름이 잔뜩 끼었어도 아파트인 집 안은 덥다. 태양의 입사광선 각도가 커진 만큼 철근시멘트 건물이 뜨거워지는 건 당연하지만, 올해는 좀 빠른 듯하다.

작년 이맘때에도 지금처럼 더웠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때 이른 더위에 비명을 지르는 이가 작년보다 늘어난 건 사실이다. 내년엔 어떨까.

유럽의 가정에 보기 드물다는 커다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쉼 없이 돌아가는 집 안은 참기 어렵게 후텁지근하다. 택배기사가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잠시 지체해야 할 정도로 옷을 최소한으로 입고 차가운 물을 마셔대지만 그때뿐이다. 밖으로 열기를 내놓는 냉장고를 끄면 나아지려나. 에어컨이 없으니 선풍기를 켜놓지만 기계가 뿜어대는 바람은 이내 지치게 한다. 이럴 때 밖에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나.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은 실내를 식힌 에너지 이상의 열기를 밖으로 내놓는다. 시원해지는 만큼 바깥의 이웃에 불쾌감을 전가하는 에어컨으로 집 안의 더위를 밀어내고 싶지 않다.

신혼살림으로 등극한 지 오래된 에어컨을 바라만 보는 것도 고역일 것이다. 견물생심이므로, 있으면 켜게 되겠지만 누진요금 적용된 요금고지서를 볼 때마다 후회할 텐데, 밖은 더 덥다고 아우성이다. 열사병이 점점 두려워지는 도시에서 혹독한 더위를 피할 냉방공간이 복지 차원으로 등장하는데, 에어컨이 보편화될수록 도시의 더위는 더욱 심해진다.

한여름에 밖에서 일해야 하는 이는 얼마나 더울까. 견디기 어렵게 더울 때 능률이 오르지 않는 법. 여름이면 낮잠을 즐기는 스페인의 ‘시에스타’가 부러운데, 사실 복중에 우리 조상도 시급하지 않은 일은 접었을지 모른다. 신체리듬이 그렇지 않은가.

이열치열이라며 땀을 흠뻑 흘리면 잠시 시원해지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늘에 앉아 친구와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것이 무탈하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리라.

에어컨 실외기에서 더위를 가중시키는 우리의 도시의 거리는 시원할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에어컨 바람 시원한 찻집에 들어가 팥빙수를 주문할 수 없다.

가로수 그늘이라도 끊이지 않으면 다행인데, 간판 가린다고 그랬는지, 밑동이 잘라진 가로수들이 그늘을 끊어놓았다. 가로수마다 등록해 관리하는 유럽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줄로 심은 가로수의 가지가 활짝 펼치며 나뭇잎 터널을 만드는 유럽의 도심은 공원처럼 시원하다. 걷는 시민들이 많은 만큼 상가는 활기를 띤다.

나무그늘과 뙤약볕은 섭씨 4℃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까닭에 나무를 충분히 심으면 도시는 시원해진다.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넓혀 나무를 심으면 아스팔트의 열기도 줄어든다. 가지치기를 잘하면 보행자도로와 차도가 가로수 터널로 덮어진다.

햇볕 내리쬐는 주차장에 나무를 심으면 주차하는 차가 조금 줄어들더라도 많이 시원해진다. 유럽 도시의 주차장 대부분이 그렇다. 흙을 채워 잔디를 심을 수 있는 블록을 깔아도 시원해진다. 태양광 패널로 덮으면 시원해질 뿐 아니라 전기도 생산할 수 있다. 태양광 패널도 도시의 나무요, 숲이다. 유럽의 기업 주차장들이 그렇다.

전기를 덜 쓰면 도시가 시원하다. 가정뿐 아니라 크고 작은 건물마다 전기를 덜 쓰고 효율화하면 좋다. 조명뿐 아니라 에어컨 사용을 줄이고, 낮 시간에 업무를 쉬면 좋겠다.

가정용보다 전기료가 저렴할 뿐 아니라 누진되지 않는 상가와 일반 건물의 전기 소비량만 줄여도 도시는 시원해진다. 도시 인근의 공업단지도 낮 시간에 가동을 줄이면 어떨까. 능률이 낮은 한낮에 관공서에서 업무를 관행처럼 쉬면 민원인들도 양해하지 않을까?

근린공원에 어린이를 위한 물놀이 시설을 갖춘 곳이 늘어난다. 방학을 맞은 꼬마들은 시원한 물에서 신이 나는데, 보호자들은 딱히 쉴 곳이 없다.

그늘에 텐트를 친 시민들이 이웃과 수박을 나누는 모습이 보는 이까지 시원하게 하는데, 나무가 부족한 만큼 그늘이 좁다. 점점 더워지는 세상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냉방시설은 도시를 더욱 데운다. 건강한 시민들이 밖에서 여름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시 곳곳에 나무를 충분히 심자. 내년 이후의 여름에도 시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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