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문 변호사

 어느 왕이 있었다. 간신들의 모략으로 왕은 충신을 죽이게 됐다. 그 모략을 알게 된 모후가 아들인 왕을 찾아 훈계했다. “누가 진정한 충신인지, 누가 간신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 보거라.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마음이 편해지면 그는 충신이요, 마음이 불안해지면 그는 간신이니라.”

이에 왕이 모후에게 대답했다. “어머니의 말씀이 옳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가 충신인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나 끝내 모후는 제보자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인 왕에게 훈계했다. “세상이 혼탁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비밀 누설이고, 두 번째는 죄인을 방치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세상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비밀을 누설하는 편이 죄인을 방치하는 일보다 낫다고 판단해 너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 실제로 죄인은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신들이 활개치는 무법천지가 된다.”

이 이야기의 요지는 죄인은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맑아지는 법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죄인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할 사람이 처벌하지 않고 머뭇거릴 때 사회는 더욱 혼란해지기 쉽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철저히 수사를 하겠다는 수사기관들이 있었다.

그들이 죄인을 단호하게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처벌받아야 할 죄인이 처벌을 받기도 전에 주검으로 나타났다.

부싯돌을 쳐서 그 속에 숨겨진 불씨까지 다 찾아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예리한 판단력과 덕망을 바탕으로 선정을 베풀기를 희망한다.

사건이나 사물을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파악해 진실을 밝혀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진실을 밝혀줘야 할 수사기관의 장의 한 사람이 사의를 표명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 수사와 관련, 검찰의 수사 부실에 책임을 전적으로 지고 사퇴한 것이다.

인천지검장이 사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5월 25일 순천 별장 압수수색 당시 유병언이 별장 내부 비밀공간에 숨어 있었는데도 이날 유병언을 체포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병언을 체포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체포를 하는 척하면서 안 하는 것인지에 관해 세간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검찰 수사 정보가 일부에 유출돼 유병언의 도주를 용이하도록 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지난 6월 12일에는 순천의 한 매실 밭에서 숨져 있는 상태였지만 경찰관에게서 변사보고서를 받은 담당 검사와 부장검사가 제대로 유류품을 확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당한 시간 유병언을 위해 별도로 영장을 발부받는 등의 수사력 낭비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유병언의 주검이 6월 12일이 아니라 4월이었다는 녹취록까지 등장했다. 국민들의 불신은 가중되는 상황이다.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 결국 유병언 수사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 수사였다. 수사의 실패라고 해야겠다. 경찰과 검찰이 정보 공유 문제를 두고서도 충돌했다. 수사가 용의주도하지 못했고, 정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부실 수사의 책임을 인천지검장 혼자 진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동의하지 못한다. 자칫 책임의 전가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미 전남 순천경찰서장과 전남경찰청장은 직위해제됐다.

이러한 상태에서 수사의 총책임을 진 검찰총장도 말이 없고, 경찰청장도 사퇴의 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도, 국무총리도, 대통령도 유병언 수사 실패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없다. 오히려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성한 경찰청장을 호출해서 강한 질책을 했다는 보도만 있었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경찰청장을 호출해서 질책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시신이 발견된 이후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유병언 수사의 실패 책임, 과연 누가 져야 할까? 지검장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내야 할까? 이는 수사의 최종 책임자가 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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