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어느 국가이건 훌륭한 인재(人才)를 등용하면 흥하고 사특한 간재(奸才)를 기용하면 망했다. 한 나라가 인재 등용에 신중을 기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능연각(凌煙閣)은 중국 당(唐)태종 이세민이 개국공신 24명의 초상(肖像)을 걸어두었던 누각이다. 여기에 오른 공신(功臣)들을 ‘능연각공신’이라고 부른다. 능연각에 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태종의 ‘정관(貞觀)의 치(治)’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로 이 가운데 직간하기로 유명한 ‘위징(魏徵)’이라는 양신(良臣)이 있다.

위징은 어렸을 때 가족을 잃고 가난했다. 위징은 당 고조 이연의 장자 이건성의 태자세마(太子洗馬)가 되어 이세민의 축출을 도모한 적이 있었다.

형인 건성을 비롯해 동생까지 살해하고 황제자리에 오른 이세민이 훗날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 형제의 사이를 어지럽혔는가?”하며 자신을 축출하려 한 일을 추궁하자 위징은 “당시 건성 황태자께서 신의 말을 따랐더라면 오늘과 같은 재앙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하가 주군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가히 죽음을 불사한 답변이었다. 지금 이 자리, 바로 앞에 있는 이세민 당신을 죽이려했던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고 사설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사리에 맞고 논리가 정연하다해도 죽음을 면키 어려운 대답이었다.

 이세민은 위징의 이 같은 소신과 직간하는 용기를 높이 사 죽이기는 커녕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중용했다. 이렇듯 이세민은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포용과 화합’의 명목 하에 재사(才士)를 찾아 나섰고, 위징과 같이 설사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인물까지도 등용했다.

이세민이 위징과 용인술(用人術)에 관해 논하는 자리에서 “상벌은 가볍게 행해서는 안 되고, 사람을 쓸 때는 우선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자 위징은 자신 나름의 인물론을 폈다. “인물을 선발하는 일은 예부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공적을 조사하여 그 선함과 악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을 쓰려고 하면 상세하게 그 행함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인(善人)이라고 생각되어 등용하면 일을 잘 수행하여 나가지 못한다 해도 재주가 부족할 뿐 커다란 해(害)는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하여 악인(惡人)을 채용하면 그 인물이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있을수록 더욱 해가 됨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재(才)와 덕(德)을 갖춘 인물을 기용해야 합니다”

‘깜’이 안 되는 인사가 벼슬에 눈이 멀어 도전했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예를 우리는 최근 잇따라 열린 청문회를 통해 알고 있다. 국무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잇따라 낙마하자 우리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너무 까다롭다며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야말로 위험한 생각이다. 웬만하면 쓴다하지만 퇴락할 대로 퇴락한 인물을 어떻게 그대로 쓴다는 얘긴지 도무지 모르겠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연후에 치국(治國)이라는 말은 예나 이제나 맞는 말이다.

막중한 국사(國事)를 간특한 자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위징의 말대로 재덕(才德)은 갖추지 못하고 잔재주만 지녀 사특한 자는 언젠가는 큰 도둑이 되어 국가에 끼치는 해악이 크게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이 시각에도 목도하고 있다.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찾지 못할 뿐이다. 나라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그리 쉽사리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政(정)은 正也(정야)라’했다.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서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답하기를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바로잡는다의 뜻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수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인재의 등용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잘하는 정치다. 공신누각에 오르기는커녕 인사 검증 대(臺)에 서보지도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위선으로 포장된 공직 부적격자들이 너무 많다. ‘공신각’이니 ‘능연각’이니 하여 누각을 세운들 초상화 하나 내걸 인물이 없는 우리의 정치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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