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큰 기대를 걸고 방문했던 독일의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과연 나의 목표를 뛰어넘는 규모와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세계적으로 유망한 근세 가구들이 전시돼 있고 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시간부터 유명세를 타게 되지만, 현재까지도 한국 작가들의 제품이 초청받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의 사전 지식으로선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오히려 회사의 건물들을 세계적인 건축설계사의 작품으로 이뤄 놓은 후, 유명 가구 디자이너들의 생산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그 제품들을 선전하는 아이디어를 창출한 것이다.

따라서 건축 및 가구에 공히 관심 있는 관객들이 세계 각국에서 이곳으로 쇄도하고 있으며, 회사는 관광수입과 자사 제품 선전을 동시에 이뤄 내고 있다. “5년 이전에만 왔었어도…”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해 히드로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할 때 방문 목적을 박물관 탐방이라 하자 심사원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 앞으론 업무차 올 때에도 이렇게 얘기할까 보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인근의 지하철을 탔다. 최 교수께서 익숙한 솜씨로 자동 티켓을 구매해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다.

 이 갤러리는 원래 화력발전소였는데 1999년 말 현대미술 전용 건물로 완성됐으며, 2000년 5월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참석으로 공식적인 개관에 이른다. 옆으로 흐르는 템즈 강에 아름다운 밀레니엄 다리가 있고 건너편엔 웅장한 세인트폴 성당이 보였다. 목가구가 없다는 말에 시큰둥했던 나는 그러나, 두 개의 기획전 중 앙리 마티스의 ‘오리기(The Cut-outs)’란 타이틀로 나온 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치원에서 색종이 자르기로 붙인 것만 같은 작품들은 장난 놀이 같고 난해하기만 했는데, 그 중 1052년 작품인 ‘블루 누드(Blue Nudes)’를 보곤 웬일인지 마음이 편안해져 250파운드나 하는 카피본과 그의 두툼한 35파운드짜리 책을 사고 말았다. 이 특별 전시를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메릴린 린치’가 자랑스레 후원한다는 글이 곳곳에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런던에서의 제일 중요한 목적지인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A)’을 방문했다. 박람회 대로를 사이에 두고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그리고 V&A와 앨버트홀이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150여 년 전부터 박물관 클러스트를 계획해 실현한 결과물이라 한다.

사우스 켄싱턴역에 내린 우리는 자세한 안내판과 곳곳에 위치한 안내원들의 인도로 쉽사리 입구에 도착했다. 제일 상층에 위치한 가구 전시홀로 직행하는데 층계 및 손잡이가 전부 원목으로 잘 조각돼 있었다. 곧 세 개 라인으로 설치된 원목가구 작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과연 그곳에는 이번 여행 중 여러 나라에서 봐 왔던 유명한 가구 제품들이 나열돼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입장료도 무료였지만 사진도 마음껏 찍게 해 준다. 더불어 휴일과 야간에도 개방을 하는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국민의 교육과 학술이라는 교육적 이용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란다.

디지털 기계와 컴퓨터로 제작됐다는 정교하고 복잡한 목제품도 진열했는데 영상으로 그 제작 과정을 보여 주는 비밀스러운 장치도 있다. 높은 천장에 에어컨 시설로 잘 정돈된 진열 상태였지만 많은 관심 작품들이 놓여 있어서 두 번씩 왕복을 해 가며 관찰했는데 갑자기 최 교수께서 “졌다. 졌어!”하신다.

자세히 보니 두 개의 탁자 위에 세계 각국의 유용한 목재 샘플들과 보드류들이 비치됐는데 해당 스위치를 누르면 영상물로서 그 수종에 관해 자세히 풀어줄 뿐만 아니라 가공 모습을 보여 주며 특징까지도 알려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자료였던 것이다.

이후 독특한 가구 생활용품으로 유명해 세계 주요 도시에 진출한 콘란상점(The Conran Shop) 본점을 방문해 주요 제품들을 견학하고 마지막 날 대영박물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이 20만 점 내외인 것에 비해 700만~800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초대형 박물관이지만 우리의 이번 여행엔 그리 의미가 없어 보였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박물관이 제일 많은 도시는 런던으로 173개에 달하며 뉴욕이 131개이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타 상황을 보더라도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조건이라 할 것이다. 금번 여정을 통해 이제 비로소 정신적 지주가 될 문화예술과 우리의 창조경제가 나아갈 길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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