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처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와서인가 날씨가 덥지 않다. 아침저녁으로는 언뜻 하늘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없던 입맛도 조금은 살아오는 듯하다. 여느 해보다 두 주일 이상 빨라진 추석 때문에 염제(炎帝)가 스스로 더위를 거둬 가는 것인가.

그러나 더위를 잊게 하고 입맛을 나게 한 진짜 이유는 그보다 우리가 사는 동안 다시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충무공 이순신과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의인(義人) 두 사람이 8월의 더위를 씻어 우리 마음을 청량케 했다.

‘명량’이 1천500만 관객 숫자에 다가선 까닭은 보기에 굉장스러운 화면과 배우의 연기가 출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어느 전문가의 안목으로는 이 영화가 가진 예술로서의 총량이 훨씬 미흡하다는 평가까지 내린다.

그런데도 관객이 몰리는 까닭은 영화 속에서 진정한 한 의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데 연유한다는 이야기다. 400년 전 시대를 살았던 이 땅의 한 의인, 한 지도자가 보여 준 뛰어난 리더십! 그런 진실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고 싶은 오늘 이 시대의 갈망이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충무공을 흔히 위기와 역경을 돌파해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죽음으로써 이뤄 낸 한 장군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오늘의 관객은 거기에 더해 그의 전인간적(全人間的)인 면목과 충의의 리더십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몸 전체에 흐르는 거짓 없는 진정성, 그것을 통해 시민 하나하나가 자신의 목마름을, 마음속의 열화(熱火)를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것이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니라. 나라는 죄(罪)가 있으면 주관자(主管者)가 많아져도 명철(名哲)과 지식(知識)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長久)하게 되느니라.”

구약(舊約)의 잠언 28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 탓인지 불현듯 이 구절이 생각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구절에 달리 무슨 이론(異論)을 피력하랴. 마치 충무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읽을수록 공교롭다. 바로 잠언은 임전불퇴, 사자처럼 담대한 충무공의 충성심과 용감성을 빗대는 듯하다. 또 공의 명철과 지식이 쟁명(爭鳴)으로 어지럽고 요란한 이 나라의 역사를 장구히 잇게 한 밑거름이었다는 비유 같기도 하다.

문득 충무공이 지닌 사심 없는 지도자의 덕목을 되풀이 리더십이라는 피가 돌지 않는 서양 언어로 말하는 것이 외람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가 이 같은 언어 표현을 제 것인 양 두루 사용하거니와 서양에서 난 프란치스코 교황을 칭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용인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억이 넘는 전세계 천주교 신자의 영적 지도자, 리더이다. 그분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어루만짐과 보살핌이라고 한다.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 스스로 자신을 낮춰 내려놓는 더없이 크고 위대한 리더십!

“프란치스코 열풍과 이순신 신드롬의 원인은 뭘까.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두드러진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우선 꼽힌다. 미국 보스턴글로브의 존 앨런 기자는 ‘한국인은 빠른 경제성장의 그늘을 치유해 줄 따뜻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정치인들에게서 받지 못했던 보살핌의 느낌을 교황에게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서울의 모 일간지 보도가 답을 내놓는다. 이 땅에서 4박 5일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로 거룩하고도 고귀한 보살핌, 어루만짐을 우리들 상처 얼룩진 가슴에 새겨 주고 떠났다.

이제 마지막 공교로움을 말한다. “광화문, 그 앞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을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다시 그 앞에는 긴 칼을 찬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는 기사 구절에서 묘한 흥분을 느낀다. 분명 이 두 의인은 전생에 이미 이 땅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던 것 같다.

끝으로 간절히 염원한다. 여름을 보내는 8월의 끝자락, 누구 하나 국민의 가슴, 가슴속 체념의 열화를 씻어 줄 사람은 없는가. 단 4박 5일간이라도 처서 하늘빛처럼 마음 청랭하게 해 줄 사람은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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