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과 교수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국민들은 군대를 불신하고 그 이전의 의문사까지도 일부러 밝히지 않았을 뿐 사실은 억울한 죽음이었을 것 같은 짐작을 하게 만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잔인하게 왕따를 시키고 자살할 때까지 폭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가 군대에 가면 결국은 함께 살인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런지 막막하다. 물론 가해자들도 이미 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젊은이들이나 상처를 받았던 젊은이들이라고, 이들도 다른 고리에서는 피해자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특성상 아래 계급이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하나의 절대적인 규칙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문제다. 이 규칙을 이용해 벗어날 수 없는 집단에게 목표를 정하고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해 폭행의 공동 범죄에 가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대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가해자와 동기, 범죄의 경중을 가려서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단을 그리고 가해자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을 해도 되는 범죄를 용인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목적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가능한 한 적게 만드는 것 그래서 상부로의 보고를 생략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을 왜곡 보도하게 만든다.

범죄행동을 응징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사실이 알려질까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범죄 공동체가 돼 알려지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범죄를 덮어 두는 체계에서 누가 안전하고, 누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을 불신하게 만든다. 그들이 밝히는 어떤 사실도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는 살면서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사고로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면 해결하기 위한 접근을 보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체제에 대한 신뢰를 하기도 하고 불신을 하기도 한다.

윤 일병 사건은 단순한 불신을 넘어서 국민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무력감을 가지게 한다.

맞아 죽어가면서, 때리면서 서로가 느끼는 공포감을 우리도 함께 느끼면서 이런 상황에 노출된다면 체제가 보호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폭력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이번의 교황 방문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정의를 지키는 것은 어렵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국가를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힘없는 자의 어려움을 쉽게 외면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문제를 더 크게 확대하지 않는다고 편리한 방법을 찾는다면, 개인이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사태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작은 사건도 그냥 지나감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 조그만 억울함도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바람, 이런 바람이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을 꿈꾸는 것일까? 큰 체제 안에서 작은 폭력을 눈감아주고 명령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 항변도 못하게 하는 그런 묵인된 폭력사회를 바로잡아 주려고 노력하는 정의로운 국가를 국민은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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