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상섭 바오로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셨던 4박 5일이라는 짧지만 긴 여운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마음속에 가장 깊이 와 닿는 말은 바로 ‘기억하겠다’는 한마디였습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날 서울공항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시고 한 첫 말씀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위로를 전하셨고, 같은 날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도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임무의 두 가지 측면을 성찰하자며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돼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기억의 지킴이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이상으로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복음을 가져다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시킨 그 희망의 지킴이가 돼 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희망의 지킴이란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해 예언자적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고 “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대통령 등 정부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도 “과거의 불의를 잊지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날 시복 미사에서는 신앙을 이어올 수 있도록 지켜준 순교자들에게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해 계속해서 그 신앙을 지켜 나가 달라”고 촉구하셨습니다.

또 “오늘의 이 경축을 통해 이 나라와 온 세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마음에 품고 기리고자 합니다. 특별히 지난 마지막 세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분의 이름 때문에 모진 박해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억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지금 현재도 박해와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한국을 떠나시기 전 명동성당에서 드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어르신들,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장애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철거민 가족, 밀양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주민, 새터민, 납북자 가족’이 초대됐습니다.

교황님은 강론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아무런 남김 없이 용서하라”고 하시며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하시며 삶 안에서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약속을 기억하셔서 꼭 지키시는 분이셨습니다. 교황님께서 떠나시던 날 한 소녀가 꽃을 들고 흔드는 것을 발견하신 후 차를 멈추게 하시고 장미 꽃다발을 받으시며 “로마로 가져가서 성모 앞에 이 꽃을 바치고 한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로마에 도착한 직후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찾아 이 꽃다발을 약속대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한국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큰 과제를 남기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든 것들을 빨리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기억의 지킴이’, ‘희망의 지킴이’가 돼야 합니다.

교황님의 말씀과 행보를 잊지 말고 교황님께서 연민과 사랑으로 받아들인 그들을 지금 우리들 삶에 초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소 짓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줘야 합니다. 그들과 한마디의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한 발을 내디뎌 함께 걷기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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