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의 매력은 신선함이다. 짧은 시간 안에 펼쳐내는 스토리와 화면 구성은 장편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작품의 주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영상 표현에 있어서도 단편영화는 독창적이며 실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렬하다. 그래서일까, 단편영화의 잔향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벽’은 장편영화 못지않게 밀도가 뛰어난 작품으로, 제2회 유럽단편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유럽의 젊은 여성 감독이 창조한 ‘벽’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도 허물어지던 시기, 에스토니아의 탈린시에는 여전히 단단한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전직 피아니스트였던 여인은 빛바랜 남편의 흔적처럼 나이 들어갔다. 노년인 여인의 소일거리라고는 액자를 닦는 것과 피아노 연주뿐이었다.

단정하고 깔끔한 집처럼 흐트러짐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오래된 피아노처럼 차분했지만, 생기는 없었다. 이런 그녀의 조용한 삶은 새 이웃의 등장으로 흔들린다.

라디오를 수리하는 이웃집은 각종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벽을 타고 여인의 집 안까지 들어와 웅웅거렸다.

조용히 해 줄 수 없느냐는 제스처로 벽을 쿵쿵 쳐 봤지만, 잡음은 여전하다. 더욱 세게 쿵쿵쿵 벽을 치는 여인과 헐거워진 벽면 콘센트와 씨름하는 남성. 결국 ‘펑’소리와 함께 전기가 끊어지고, 양쪽 집 모두 깜깜한 어둠에 파묻힌다.

촛불을 켜고 각자의 집을 살펴보던 중, 두 사람은 작은 구멍을 통해 눈이 마주친다. 힘줘 두드리던 벽면에 동그란 틈이 생겨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그날의 마음처럼 구멍 난 벽면은 임시방편으로 아무렇게나 막아 뒀지만, 상대에 대한 호기심은 막을 길이 없었다.

서로를 배려한 듯, 라디오 소리는 정돈됐고 여인 또한 이웃을 생각하며 건반을 눌렀다. 작은 틈 사이로 은근히 스며오는 여인의 향기, 페인트칠을 하는 붓의 움직임, 벽을 쓸어내리는 손길 등을 통해 영화는 때로 관능적으로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현관에 선 이들,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움직임에 설렘이 가득하다.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이 싫어진다.

 젊음이 지나간 육체, 늙지 않은 마음, 너무 많이 살아온 세월 등이 서글픔이 돼 밀려온다. 끝내 벽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 이들의 삶은 전에 없던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시대도 종식을 맞이했듯, 1989년 황혼의 만남도 따뜻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영화 ‘벽’은 에스토니아 출신 감독 안나 힌츠의 2012년도 작품이다. 벽을 사이에 둔 채 살아가는 노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작품은 중의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감각적으로 표현해 낸 황혼의 로맨스는 노년의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1989년이라는 역사적인 시점과 에스토니아라는 공간은 이 영화의 서사가 해당 시대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은 구소련의 몰락과 에스토니아의 독립에 영향을 줬다. 따라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노인의 모습은 공산주의의 폐쇄성과 쇠락한 사회의 반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해석에 따라 해피엔딩 혹은 그 반대도 가능한 열린 결말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영화 ‘벽’의 잔향을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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