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공원 옆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국권은 회복됐으나 아직 그의 유해는 돌아오지 못했다. 진정으로 국권이 회복되지 않은지도 모른다. 제국의 심장을 쏘아 전세계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민족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에 대해 살펴보자.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의 전형적인 향반(鄕班)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조부의 훈도로 한학과 역사를 배우며 민족의식을 키우고, 포수들에게서 사격술을 익혀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다. 1894년 동학혁명이 발생하자 그는 부친과 함께 사병을 조직해 토벌에 나섰다.

 당시는 동학을 혁명으로 보는 긍정적 평가보다 농민 반란으로 보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특히 양반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병을 거느려야 했다.

그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개화파와 연계를 맺고 갑오개혁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동학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때 그는 동학 농민군의 접주로 활동하다 관군에게 패해 피신하던 백범 김구를 만나 몇 달간 같이 생활하게 됐다. 가는 길은 비록 달랐지만 둘의 좋은 인연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구국의 방책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나는 국권이 회복될 때까지 술을 끊기로 했다.” 타고난 술고래로 술 마시고 친구 사귀며 말 타고 총 쏘며 사냥을 즐기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그가 이후 순국할 때까지 단 한 잔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중국에서 귀국 후 교육계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진남포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고, 평양에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진흥운동에 매진했다. 진정한 영웅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전인적 인격을 갖춰야 하는 것, 그야말로 안중근은 ‘문무겸전’의 전형적 예다.

고종 퇴위, 군대 해산 등으로 조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결국 그는 산업진흥운동에서 무장독립투쟁으로 방향을 바꾸고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해 노령 한인사회의 지도적 인물이자 거부인 최재형의 지원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했다. 이후 몇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펼쳐 초기 항일무장투쟁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9년 3월 초 그는 항일투사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大韓獨立’이라 쓰며 독립운동에의 헌신을 다짐했다. 그가 손가락을 자른 곳인 크라스키노 유니베라에는 그의 단지동맹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로 결의했다. “여러 해 소원한 목적을 이루게 되나니 늙은 도둑이 드디어 내 손에서 끝나는구나.”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의 도착을 기다리던 그는 오전 9시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하자 앞으로 뛰어나가며 브라우닝 권총으로 그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시켰다.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이토는 우리 민족으로 볼 때는 불구대천의 원수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을 이끈 영웅으로 1천 엔권의 초상이 될 정도로 추앙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죄업을 깨닫지 못하고 안중근을 향해 ‘바카야로’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안중근은 독립군의 참모중장이었지만 전쟁포로가 아니라 일개 암살범으로 단죄돼 열흘도 안 되는 초고속 재판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 집행 전 간수가 말했다.

“사형을 집행하려 합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결국 5분 동안 읽고 있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왜 인류의 양심으로 추앙받는지, 왜 당시 간수였던 일본인들에게도 추앙받는지 이해된다.

역사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E. H. Carr가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역사과목이 필수로 부활하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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