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태일 인천시 남구 부구청장

사흘 후면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족한 추석 한가위는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큰 명절이며 조상의 은혜에 감사 드리는 보은의 축제다. 추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바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항상 근본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기에 누구나 이때가 되면 엄청난 교통 체증을 감내하면서도 귀성의 대열에 동참하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정신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이 말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즉, 뿌리를 찾아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의 제사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미풍양속이다. 한(韓)민족 9천 년사의 국통맥을 밝혀 놓은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편을 보면 “삼한의 옛 풍속에는 10월 상일에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내고[天圓], 땅에 지내는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내며[地方],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는 세모진 나무 [角木]에서 지냈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천문화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사상(三才思想), 원방각(圓方角,○□△)이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의 해법을 동양사상의 원전인 주역에서 찾아보면 나름대로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주역의 28번째 괘인 택풍대과(澤風大過)괘를 보면 이는 서방의 못물이 넘쳐나서 동방의 나무가 물속에서 뿌리째 썩고 있다는 것으로(大過는大者過也 棟橈 本末弱也) 즉, 서양 물질문화의 범람으로 동양의 정신문화가 썩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경로효친 등과 같은 좋은 풍습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면 대과괘에서 말한대로 현실이 돼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주역에서는 이 어려운 대과의 시대를 살아나가는 지혜를 이렇게 알려 주고 있다.

“(제사)자리를 까는데 흰 띠를 쓰니 허물이 없느니라(藉用白茅 无咎).” 이는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땅에다 제물을 놓고 지내도 무방하건만, 깨끗한 흰 띠를 깔고서 그 위에다 제물을 올려다 놓고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받드니 그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실수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51번째 괘인 우레가 거듭돼 괘를 이룬 중뢰진(重雷震)괘의 괘사를 보면 “우레가 오니 놀라고 놀라지만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우레가 백리를 놀라게 하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
한여름 장마철에 누구나 한 번쯤은 천둥소리에 놀라 잠을 깬 적이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바로 칠흑 같은 한밤중에 폭우가 내리며 천지를 진동케 하는 천둥과 벼락이 치고 있는 진괘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전 지구적인 온난화 등 환경재앙,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진 세계 경제, 국가이기주의와 이념 간의 갈등으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국지전 양상의 각종 전쟁터 그리고 인간의 탐욕으로 추락하고 있는 도덕성 등.

그래서 공자는 진괘 단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같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세상에 하느님과 조상을 받들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천지가 뒤바뀌는 대격변기에도 하느님과 조상님이 음호하여 살려주시니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천지가 진동할 때 두려워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서 복을 이루며 평상시에도 죄 지은 듯이 근신하여 살아가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홀로 있을 때라도 스스로 삼가는 신독(愼獨)의 자기수양을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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