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수확한 곡물로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고 가족·친지와 더불어 밤낮으로 즐겁게 지내듯 한평생을 살고 싶은 마음을 ‘더도 말고 덜도 날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한다.

 이처럼 추석은 풍요로움과 즐거움의 표상이다. 그러나 최근 명절 증후군이라는 이름 아래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가족 간의 다툼이다.

 이는 심각할 경우 폭행, 이혼, 심지어는 살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불화의 단초는 각 가정마다 다양하겠지만, 평소 잠복해 있던 갈등이 명절이라는 기폭제를 통해 충돌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문제가 그러하듯 중요한 것은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다. 어떤 태도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달라진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는 것이다.

영화 ‘비밀과 거짓말’은 신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의 불편한 현실에서 시작한다.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온 신시아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올해로 스물한 살이 된 신시아의 딸 록산느는 아버지도 모르는 자식(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비난한다. 록산느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외삼촌뿐이었다.

그러나 외숙모와 앙숙으로 지내는 어머니 덕에 이들 가족은 서먹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신시아는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는 자신의 이름이 호텐스이며 신시아의 딸이라고 말한다. 누가 보태주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하고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삶을 살아가던 신시아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버린 딸을 만나러 간다.

당시 신시아는 열여섯 살 소녀였다. 그녀는 출산 후 아이를 보지도 않은 채 입양 보냈다. 25년이 흘러 처음 본 딸은 자신과 너무 달랐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반듯하게 잘 자란 그녀는 중산층의 전문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흑인이었다. 서로가 다른 인종일 거라곤 두 사람 모두 생각도 못 해 본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레 핏줄이 당기듯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자신의 모습을 통해 확인한다. 어느새 가까워진 모녀는 틈틈이 만나 그간 못 나눈 정을 느낀다.

 다시 만난 딸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과 기존 가족들과의 불편한 관계는 신시아의 반항적인 딸 록산느의 스물한 번째 생일을 기점으로 충돌하게 된다.

뜻밖에 등장한 새로운 가족 호텐스의 등장은 그간 서로가 가슴속에 숨겨 뒀던 비밀과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쌓아올렸던 거짓말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폭제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한 비밀의 탑을 쌓다 보면 이는 거짓의 외벽에 파묻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비밀의 실체는 더 큰 두려움 속에 또 다른 거짓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악순환을 이어간다. 영화 ‘비밀과 거짓말’은 신시아를 중심으로 가족 간의 오래된 비밀과 거짓말이 키워 낸 불신, 이로 인해 곪아 터진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199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함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같은 해 국내 개봉된 데 이어 올해 4월 재개봉돼 관객과 만났다.

이 영화는 가족의 갈등을 통해 영국 내 자리잡은 인종 문제와 사회계층 간의 문제를 지적해 낸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단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쌓아올린 비밀과 이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은 지역과 시대와 상관없이 그 가족의 영혼을 잠식시킨다.

어긋나 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란 결국 비밀과 거짓의 허울을 벗어던지는 용기와 그 진심을 이해하는 마음뿐이다. 세상의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 삶이 복잡한 까닭은 그 단순한 삶의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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