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을 때다. 악마가 찾아와 ‘무엇을 심고 있느냐?’고 물었다. 인간은 포도나무라고 대답을 하면서 달콤하고 맛있는 이 나무 열매를 발효시키면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술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악마는 일을 도와준다며 양, 사자, 돼지, 원숭이들을 끌고 와 죽여서 그 피를 포도나무의 거름으로 뿌렸다.

이후 사람들은 술을 처음 마실 때에는 양처럼 온순하다가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거기에 더 마시면 돼지처럼 뒹굴며 추잡해지며, 그 이상 또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 부르고 이성을 잃어 마침내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술 이야기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술 취한 사회다. 매사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다퉈 술 마시고 성추행을 일삼는 비행(卑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의 일로 법조인이며 정치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여성 캐디의 몸을 손으로 접촉하는 행위가 있어 성추행으로 신고당하는 사건이 보도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지난 12일 피해 여성이 사건을 신고함에 따라 박 전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어 전해지는 소식 또한 한 대학교 총장의 여학생 성희롱 의혹 뉴스다. 남승인 대구교육대학교 총장이 성희롱과 폭언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총장이 총학생회 간부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일부 여학생에게는 ‘술 먹을 때 꼭 내 옆에 앉아라’는 내용의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상기 두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 주장의 행위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며 성토를 이어가고 있다.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혹자는 사회적 신분의 지위고하를 따지지 말고 “이들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우라”며 흥분하고 있다. 적극 검토해 볼 것을 사법당국에 권한다.

우리는 법치주의 사회다.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법 적용에 있어 차별을 두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사회지도층들의 비행에는 보다 높은 정도의 엄격한 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이들에게는 보다 높은 도덕적 의무,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초법적인 신분은 없다. 결코 ‘법은 지체 높은 신분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法不可於尊)’라고 하는 어불성설의 예외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

검사들의 주취 행태와 비행들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빈발하는 만큼 여기서는 인용조차 접는다.

검찰, 변호사와 함께 법조삼륜으로 불리는 법관마저 비행에 동참하고 있으니, 법복을 입은 법관조차도 법복의 무게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근자 들어 한 현직 판사가 술자리와 노래방 등에서 여대생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로 법원조직마저 성추행 파문에 휩싸이고 있다.

술 취한 사회에서 취하기는 나라를 지킨다는 군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군사대비태세 강화조치가 내려진 기간 중임에도 육군 4성장군인 신현돈 당시 1군사령관이 위수(衛戍)지역을 이탈해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점이 드러나 전격 해임 조치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군 사령관은 군사대비태세가 발령된 만큼 평소보다 높은 수준의 비상상태를 유지해야 함은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금주령을 내려야 할 사령관이 오히려 음주 추태를 부린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육군 대장인 군 사령관의 음주행위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별 4개가 떨어진 것은 창군 이래 초유의 일이라 한다.

 어처구니없는 한 군 장성의 주취 추태행위로 빚어진 품위 손상 사건으로 명예로워야 할 우리 군(軍)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법조와 대학, 군대는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진다 해도 맑아야 할 곳 중 하나다. 이렇듯 우리 사회 어느 분야 한 곳 맑은 곳이 없다.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인가. 충격을 넘어 온통 우리 사회는 허탈감에 빠져 있다. 술 취한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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