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림 인천대학교 영어교육과 강사

 흔히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계절의 순환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제 우리 곁으로 왔다.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지난 여름의 갈등 열기를 이 삽상한 절기에 한번쯤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는 과연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먼저 해 보기로 하자. 그런데 불행하게도 15년 전 미국 타임지에는 ‘사실, 아시아인들은 생각하지 못한다’(It’s True. Asians Can’t Think)라는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자칫하면 인종차별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제목이나 이를 쓴 기자는 중국계로서 싱가포르의 외교관이자 학자인 키쇼어 마부바니의 ‘아시아인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을 소개한 자기성찰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논지는 이러하다. 과거 100년간에 걸친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절대 우위는 어느 문명도 경험해 보지 못한 획기적인 현상이었다.

 이는 경제성장이나 기술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독창성’의 문제였으며, 결국 ‘창의적인 생각’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력, 산업기술과 핵기술은 뉴턴의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기초를 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정치체제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논리를 가져왔고, 경제구조는 케인스와 프리드만의 경제이론에 기초했으며, 금융시스템은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조언과 영향을 받았다. 즉, 아시아의 모든 ‘생각의 틀’이 서양의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아시아인들에게 독창성의 결여를 가져오게 했는가? 먼저 생각하기보다 암기를 강조하는 교육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교육 방법은 곧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시아인들에게는 항상 ‘정확한 답’이 책이나 전문가들에 의해 찾을 수 있다는 심리현상이 각인돼 있다.

교사는 진리를 전달하고 어른은 항상 옳으며, 정치지도자는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이러한 권위에 공개적으로 묻는다는 것은 곧 기존의 전통과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전승된 질서 유지의 유교철학이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막는 장애로 비판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지식의 발전은 기존의 생각의 틀에 대한 부정이나 수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문제해결 능력’보다는 커다란 질서 안에서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며, ‘답 찾기’가 ‘문제해결’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현상이나 과학에서는 비교적 ‘답’ 찾기가 용이하나 사회현상에서는 갈등요소가 혼재돼 있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수용하는 ‘답’ 찾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답 찾는 당사자’들이 특정 이념에 매몰돼 자기들이 제시하는 ‘모범답안’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주장할 때엔 사회적 합의는 도출될 수 없고 그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모든 갈등 해결에서 이러한 ‘정답’ 찾기만을 추구한다면 정치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의회민주주의는 실종될 것이며, 정부의 기능은 무력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긍심 회복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현대역사에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가 한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민족이며 험난한 사회문제에서 ‘정답’을 추구해 왔기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 5개월간 세월호로 인해 국가의 동력이 멈춰 버린 느낌이다. 유가족들도 수사권과 기소권이 특별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이것만이 해결의 ‘답’이라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답 찾기 강박관념에서 자유 함을 얻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전을 최대의 과제로 삼아야 하지만 이보다 더한 예기치 못한 사고와 불행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고대의 법은 가해자에 대한 잔인한 발상이 아니라 피해자의 보복의 최대치를 명시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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