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안겨 준 전쟁의 참화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가 계속 존중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보다 폭넓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한다.”

유엔헌장 전문 중 앞부분 일부다. 유엔(United Nations)이라는 명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고안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26개국 대표가 모여 추축국(樞軸國)에 대항해 계속 싸울 것을 서약했던 1942년 1월 1일 ‘연합국 선언’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유엔은 그 후 미국·영국·중국 등 유엔헌장 서명국 과반수가 유엔헌장을 비준한 1945년 10월 24일 공식 출범, 이후 매년 10월 24일을 ‘유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유엔의 목적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다. 이를 위해 행동 원칙도 두고 있다. “▶모든 회원국은 국제 분쟁을 국제 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며 ▶모든 회원국은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 행사를 삼가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엔헌장의 선언과 목적에는 아랑곳없이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도 유엔총회 개막에 맞춰 각국 정상들이 유엔에 모여 세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숱한 연설과 강제력 없는 선언만이 난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당시 필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단 일원으로 유엔총회 취재차 도미(渡美)한 적이 있었다. 이때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공동체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남북한 간에 신뢰 구축 노력이 진전될 경우 재래식 무기의 감축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핵문제에 대해서도 남북한 간의 협의를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도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조속한 통일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군비 감축 ▶사람과 물자,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확대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핵 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북한은 모든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에 조건 없이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며, 안정 속에 협력하는 동북아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세계가 함께 나서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당시 우리가 가슴 아픈 일로 여겼던 ‘유엔 두 자리 의석’에 대해서도 “같은 언어·문화·역사를 공유하는 남과 북이 유엔에서 2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아직 한반도는 분단의 장벽에 가로막혀 수많은 이산가족이 그리움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강조,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북한 리수용 외무상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 회원국 대표연설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평화와 안전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 회원국의 생존권과 자주권 문제”라며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이 완전히 없어져 우리 자주권·생존권에 대한 위협이 제거된다면 핵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전히 남북한 간 화해의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1991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2014년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담긴 핵 없는 한반도와 통일을 희구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4반세기가 가까워 오도록 한반도에서 핵이 포기되거나 군축(軍縮)의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유엔의 책임이 크다. 국제 분쟁, 인권침해, 환경오염 등에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하는 책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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