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지난 9월 6일 저녁, 인천 동쪽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퇴근길을 재촉하며 시민이 휴대전화로 무지개를 촬영하자 신호 대기하던 승용차 운전자도 휴대전화를 차창 밖으로 꺼냈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고 시를 쓴 영국의 워즈워드는 나이 들어 설레지 않게 된다면 차라리 죽은 게 낫다고 읊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떨린다는 건데, 워즈워드만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요즘 도시는 무지개를 연출하지 못한다. 내린 비가 대기 중에 수증기를 흠뻑 남겨야 햇빛이 빨주노초파남보 스펙트럼으로 펼쳐지는데, 도시의 열기가 금방 말리기 때문이리라.

농경지가 콘크리트보다 넓고 숲과 습지가 아스팔트보다 넓었던 시절 드물지 않던 소나기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일지 모른다. 그만큼 회색 도시는 삭막하다.

전국은 시방 황금물결이다. 해마다 익은 벼가 연출하는 이맘때 광경은 한 세대 전 인천에도 흔했지만 지금은 부평의 삼산동에 국한돼 있다.

삼산동의 황금물결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과거처럼 드넓지 않아도 시민에게 가을의 넉넉함을 선사하는 풍경이 이어지려면 도시 농경지의 가치를 인식하고 보전하려는 정책이 중단되지 않아야 할 텐데, 손바닥만큼 남은 삼산동 들판을 바라볼 때마다 불안하다.

삼산동 시민은 인천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보다 무지개를 자주 만날 것 같다. 주변에 아파트가 빼곡할지언정 한바탕 소나기 이후 반짝 햇살이 비칠 때 대기가 한동안 촉촉할 게 아닌가. 하지만 삼산동 무지개도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인근의 고속도로와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무더운 공기가 습기를 이내 제거할 것이므로.

시민이 필요한 농작물의 지극히 일부만 보충하는 데 그치는 도시의 농경지는 거둬들이는 농작물의 양이나 가격보다 존재 가치가 크다.

농경지가 갖는 습지의 기능은 도시의 풍수해를 그만큼 완충하고 지하수맥을 유지해 주지만 녹색에서 갈색으로 이어지는 논밭은 회색 도시에서 지친 시민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한다. 도시 어린이에게 생산의 참모습을 알게 해 주며 자신이 먹는 음식의 원천을 깨닫게 한다.

지난 10월 4일로 16일간 경기장을 북적이게 한 아시안게임은 끝이 났지만 18일부터 1주일 동안 장애인아시안게임이 바통을 받았다. 아시안게임을 위해 신축된 경기장들이 1주일 더 활용되겠지만 이후 뚜렷한 계획이 세워졌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서구의 주경기장도 물론이지만 선학동 체육관도 농경지에 세워졌다. 앞으로 신축 경기장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농경지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물경 80억 달러의 예산으로 세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은 벌써 폐허를 방불케 한다고 해외 언론은 전한다.

겨울에도 따뜻한 곳에 급하게 만든 동계올림픽 경기장이라도 대회를 마치고 찾아오는 이용자가 많다면 시설이 유지될 텐데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천연가스를 팔아 챙긴 돈으로 호화스럽게 치른 국제경기는 끝나자마자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4년 뒤 평창은 후유증 없는 대회를 계획할 수 있을까?

평소 한산하던 평창 알펜시아는 생물다양성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가 열리자 북적거린다. 평창 알펜시아가 동계올림픽 이후 다시 활기를 찾을지 알 수 없지만, 소치보다 훨씬 추운 곳이니 희망을 버리지 않을 텐데 인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막연하다. 문학경기장도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설립 이후 텅텅 비는데 선학동 하키경기장은 말해 무얼 하랴. 농경지로 환원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축구와 하키 인구를 늘리려면 문화를, 여가를 위한 시간과 돈이 충분해야겠지만 먹고살기 위해 버둥대야 하는 시민에게는 남의 일이다. 회색 도시에 지쳐가는 시민에게 번듯한 경기장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따져보자.

예산과 이용자가 없어 방치해야 한다면 차라리 예전 농경지로 차차 환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텃밭을 원하는 시민이 점점 늘어가는 이때, 민원의 향배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시민의 가슴을 무지개가 가끔씩 설레게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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