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형식과 내용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지만 세상은 형식이 내용의 가치를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인격을 사회적 지위나 외모로 재단하는 세상에서 물건의 질이 브랜드로 평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무리 본질과 알맹이가 중요해도 이를 감싸고 있는 겉틀의 양상에 의해서 그 본질과 알맹이의 수준이 확정되고 등급이 매겨지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기업이 자사 제품에 대한 디자인과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것도 내용의 중요성이 형식의 가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연을 맡는 인기 배우나 드라마의 유명 작가의 개런티가 전체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배우의 인기나 작가의 유명세가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작품의 재미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듯이 디자인이나 광고가 제품에 대한 믿음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가격이나 품질 이상으로 브랜드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가장 치명적인 미끼가 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제조업은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무명이다. 영국계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얼마 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 따르면 애플과 구글이 각각 브랜드 순위 1위와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코카콜라가 이었으며 삼성전자는 7위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5년 연속 5위를 유지하며 품질 만족도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순위는 각각 40위와 74위로, 8위인 일본의 도요타, 10위와 11위인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뿐만 아니라 20위인 혼다에 비해서도 그 격차가 크다.

중국의 중저가 폰이 애플보다 삼성전자에 더 위협적인 이유는 브랜드 충성도에 있어서 삼성이 애플에 밀리기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의 열세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만 열심히 노력해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거나 그런 기업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국가 브랜드와 국격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영국 브랜드 평가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에 따르면 2013년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16위로 전년보다 1단계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 외국 사람들에게 낯선 나라이다.

게다가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주로 ‘북한’이라는 점과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오면 즉시 한국이라고 반응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느낌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거칠고 급하고 과도하게 경쟁적이며 충동적인 국가로 인식돼 있다. 탈법이 난무하고 무질서가 판치며 불법적 일탈이 횡행하고, 대형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국가의 국격이 높을 리 없다.

물론 국격을 높이는 것만큼 천격도 걷어내야 한다. 이쑤시개로 보란 듯이 이를 쑤시면 돌아다니는 한국의 해외 여행객들에게서 한국의 국격을 보여 주기란 어려울 듯하다. 개인의 인격이 상대방에게서 믿음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듯이 국격은 외국인에게 믿음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프랑스·이탈리아에 명품이 많은 이유는 이들 국가의 국격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유럽 소비자들이 명품 승용차로 벤츠를 떠올리듯이 프리미엄 명품 가전으로 밀레(Miele)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도 독일의 국격과 무관하지 않다.

밀레는 115년 동안 스스로 역량 강화에도 힘썼지만 이 브랜드를 잘 모르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독일제라는 브랜드가 제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 이름의 도움 없이 글로벌 브랜드를 획득한 삼성이나 LG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포장은 단순히 내용물을 가리거나 과장하는 허세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내용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제품의 가치는 포장지에 대한 소비자의 판단으로 정해진다.

온라인과 실제 세계의 구분이 모호하듯이 명품 브랜드와 명품도 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국가의 품격과 브랜드를 높이는 일이야말로 한국산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첩경임을 명심해야 한다.

온라인의 가상 세계가 오히려 더 실제처럼 감각되는 상황에서 브랜드가 내용보다 더 내용 같은 세상을 살아가자면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