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기장에서 20일 열린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보치아 BC3 페어 결승 한국과 일 본 경기에서 김한수가 투구에 집중 하고 있다. 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고개가 자꾸 흔들린다.

우리 팀 파란 공을 흰색 공 주변 가까이 놓으려면 각도를 정확하게 봐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위치에 지지대를 놓는다. 나는 팔이나 얼굴을 이용해 공을 밀어낸다. 옆에 있는 일본 팀 선수는 팔이 많이 불편한지 머리에 고정시킨 막대기를 이용해 공을 굴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확히 굴러가는 공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보치아’ 종목에 출전한 스물세 살 김한수다. 20일 ‘코트의 신사’라고 불리는 정호원(28)형과 함께 짝을 이뤄 금메달 결정전에 출전했다.

우리는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출전하는 보치아는 선수들과 코치가 함께 짝을 이뤄 경기를 펼친다. 나의 코치는 바로 엄마다. 엄마와 나는 꽤 오래전부터 짝을 이뤄 경기를 치르고 있다.
나는 호원이 형과는 달리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엄마와 비밀 의사소통을 위해 만든 숫자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경기를 시작했다.

첫 경기는 정말 힘들었다. 상대편인 일본 선수들이 정말 잘해 이렇게 가다가는 3점을 줄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엄마도 긴장했는지 공을 늦게 올려 줬다. 나는 화가 나서 엄마에게 손짓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다행히 호원이 형이 많이 도와줘서 역전까지 할 수 있었다. 형은 내 차례가 되면 전동 휠체어를 끌고 와 괜찮다고 계속 격려했다.

두 번째 경기가 지나면서 점점 긴장이 풀리고 경기력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0-5에서 3-5까지 따라붙었던 우리는 세 번째에서 8-5, 마지막에 10-5 역전승을 거뒀다.

엄마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눈물까지 슬쩍 보였다. 내가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엄마 마음은 잘 알고 있다.

특수학교인 주몽학교에서 보치아를 처음 접한 나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역전승으로 일궈 낸 이번만큼 기쁘진 않았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한수는 주몽학교에서 취미생활로 보치아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재미도 있어 하고 재능도 있더라고요. 매일 병원과 집만 오가는 것보다는 뭔가 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올인’하게 됐답니다.”

엄마와 함께, 또 친한 호원이 형과 함께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돼 정말 기분이 좋다. 처음으로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 드려야겠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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