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강했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두 다리와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채로 태어나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가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다 우연히 만난 아이가 꿈속에서 아른거린 여인은 급기야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병원에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손을 놓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을 팔아 수술비를 댔고 티타늄 의족까지 사 주며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여섯 차례의 뼈를 깎는 수술을 견뎌내고 힘겨운 재활훈련을 이겨낸 아이는 어느새 영웅이 됐다. 재활을 위해 시작한 수영에 흥미를 느껴 수영선수가 되더니 급기야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3관왕을 거머쥔 수영 신동으로 우뚝 섰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로봇다리 수영왕 김세진(17)군과 어머니 양정숙(45)씨의 이야기다.

세진이는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어머니’란 말을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지난 20일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나서는 순간에도 “나를 끝까지 믿어 주신 어머니를 위해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국민 영웅으로 키운 어머니와 그 사랑으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세진이. 두 사람은 지난 18일 열린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나란히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서며 아시아인들에게 따뜻한 모성애를 전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큰 만큼 세진이는 매번 새로운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이번 대회 또한 주종목인 장거리가 제외돼 단거리 400m에서 자신보다 장애 상태가 양호한 S8등급 선수들과 경쟁해야만 했다.

오른쪽 어깨 부상이 심한 데다 주종목도 아닌 탓에 만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세진이의 출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꿈과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또 세진이가 엄마를 만났던 보육원 동생들까지 응원을 와 줬기에 더더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진이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 때까지 결코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엄마와의 약속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날 열린 남자 400m 자유형 S8 결승에서 세진이는 결국 일곱 번째로 터치패드를 누르며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앞서 열린 예선에서 5분24초62로 7위를 기록하며 8위까지 통과하는 결승행 티켓을 가까스로 따낸 부담감과 부상이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세진이는 슬퍼하지 않았다. 시합 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응원 와 준 팬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위로를 건네는 관람객과 취재진에게도 “괜찮다”며 해맑게 웃어 보이는 의젓함마저 보였다.
세진이와 어머니 양정숙 씨의 도전이 계속돼야만 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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