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요즘 방송가의 개그 소재 중에 인기를 끌고 있는 주제의 하나가 ‘의리’이다. 한때 영화인이 그런 캐릭터로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는데 그걸 개그우먼이 ‘으리’라는 사투리 억양을 섞어 가며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왜 지금 새삼스럽게 ‘의리’라는 단어에 특히, 많은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또 즐거워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의리(義理)’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사람으로서 이행해야 할 정당한 도리’ 또는 ‘서로 사귀는 도리’이다.

최근 이러한 의리에 대한 반향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불신과 배려심 없는 삭막한 현실을 타개하자는 바람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의리’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기(史記)」나 「고려사(高麗史)」 같은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사서(史書)에 본기(本紀) 외에 열전(列傳)을 뒀던 것도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왕에 대한 신하들의 의리를 포폄(褒貶)하려는 의도였다.

국가에 대한 ‘충’이나 부모에 대한 ‘효’, 스승에 대한 공경, 부부간의 도리, 친구 간의 신의도 표현만 다를 뿐 기저에는 ‘의리’가 병존하고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을 전근대사회에서는 세속오계(世俗五戒)나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담아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리’의 실천적 사례를 정려문(旌閭門), 정려각(旌閭閣) 등의 흔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웠던 정려(旌閭)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했다.

현재 급속한 도시개발에 의해 이런 역사적 유산들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져 가고 있지만 30년 전, 1983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모두 4천362개의 정려가 있고 비석으로 된 것이 전체의 45%인 1천968개였다.

건물은 대개가 단칸짜리리지만 경북 달성에 있는 현풍곽씨 정려각의 경우 12칸이나 된다. 시대별로는 고려시대 것이 34개, 조선시대가 1천871개, 일제강점기가 859개, 광복 이후에 세운 것이 1천588개로 나타나고 있다.

인천의 경우 1986년께 조사 내용을 보면 충신, 공신, 효자, 효부, 열녀, 열사, 지사 등 76명과 관련된 정려들이 있었다.

현재는 시문화재로 지정된 남구 소재 이윤생과 부인 강씨 정려, 계양구에 있는 이찰·이율 형제 정려,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서구 대곡동 두밀마을 초입에 있는 밀양당씨 정려각 정도만 남아 있다.

사실 ‘정려’는 충효의 사례보다는 열부(烈婦)나 열녀(烈女)처럼 여성들의 정절과 희생에 관련된 결과물이 많고 더 부각되기도 했다. 「지리지」나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추출되는 조선시대 인천 여성 인물은 129명 정도 파악되는데, 그들의 거주지 분포를 보면 강화(106명), 교동과 부평(각 8명), 인천(7명) 순으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강화 여성이 전체의 82%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던 것은 병자호란(1636) 때문이었다.

그들이 ‘정려’를 받게 된 내용을 보면 아픈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 자식에게 줄 젖조차 아비에게 봉양하다 보니 자식이 굶주려 죽었거나, 병든 어머니를 소생시키기 위해 단지(斷指)하거나 가묘(家廟)와 사당을 불 속에서 지키기 위해 신주를 안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대개 남편이 죽으면 함께 자결하거나 종신토록 고기나 맛난 음식을 먹지 않았고, 국가가 변란을 당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한 집안의 여성 13명이 모두 자결하는 사례 등도 있다.

전근대에는 지나치게 강조된 효와 열(또는 節)이 ‘의리’의 한 전형이었다면, 현재는 마치 특수한 집단에서 조직원 이탈을 방지하는 상징적 용어인 양 변질돼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조직문화가 청소년들에게는 자칫 대단한 것으로 비쳐지거나 물질만능의 풍조 속에 미화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공동체 사회의 기본 도리인 ‘의리’는 그 의미가 퇴색돼 버렸다.

최근 사회 일각에 나타나는 패륜, 가족애 부재, 도덕 부재의 병적인 현상들을 보면서 이 시대 인성 회복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신독(愼獨)이 수신(修身)의 한 방편이라면 ‘의리’는 치인(治人)의 실천적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맞는 보다 적확한 의미에서의 ‘의리관(義理觀)’ 재정립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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