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휠체어 배드민턴 최정만(36)과 이삼섭(45)은 대표팀에서 형제 같은 라이벌로 통한다.
운동을 시작할 때 같은 팀에서 훈련을 받았고, 체급이 같아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다 보니 서로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울산 중구청 소속인 이삼섭은 자타공인 한국 대표, 세계랭킹 1인자다.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도 훈련을 빼놓는 법이 없을 정도로 악바리 근성이 자자하다.

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최정만은 타고난 천재다. 강약 조절과 수비 분야에선 따라올 자가 없다.

23일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단식 WH1 휠체어 결승에서 만난 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팽팽한 접전으로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강력한 스파이크로 승부수를 띄운 최정만이 1세트를 먼저 따냈고, 이에 질세라 노련미로 수비를 펼친 이삼섭이 2세트를 가져갔다.

마지막 3세트는 형인 이삼섭이 끌고 갔다. 오른손을 쓰는 이삼섭은 왼손잡이 최정만이 쉽게 손이 닿지 않는 대각선 구석을 집중 공략했다. 전략이 들어맞았는지 이삼섭이 3세트 후반 17-13까지 달아났다.

그대로 몇 점씩만 주고받으면 1인자 이삼섭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언제나 그랬듯 형의 존재를 톡톡히 확인하는 대회로 마무리됐을 상황이다.

▲ 인천시 계양구 계양체육관에서 23일 열린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남자 단식 WH1 결승전에서 이삼섭(왼쪽)과 최정만이 공격하고 있다. /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하지만 만년 2인자이자 머릿속에서 ‘형님’의 존재를 떨쳐 버릴 수 없는 최정만이 반전을 쓰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길게 셔틀콕을 넘기고, 두 번째는 네트에 바짝 붙여 아웃 라인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이삼섭을 몰아붙였다.

결국 최정만은 18-18 동점을 만들더니 내리 한 점도 내주지 않고 21-18로 형님을 넘어섰다.

경기가 끝난 뒤 승리의 포효는 크지 않았다.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부둥켜 안는 것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최정만은 “선수 인생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내게 형님이었던 분을 이기게 되니 죄송스럽고, 형님께 고마울 뿐”이라며 “부상 때문에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졌는데, 형님이 절 위해 선물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삼섭도 아쉬운 내색보다 동생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형을 넘어서는 모습을 한 번쯤 볼 줄 알았는데 그게 오늘이었다”며 “우리 동생 정만이가 고생한 만큼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게 돼 기쁘고, 다음번에 진짜 승부를 펼치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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