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미소). 하지만 이제 정말 도전할 것이 없어요. 함께한 20년의 시간 동안 ‘인천시립합창단’은 세계적인 합창단 반열에 올랐고, 50년을 넘어서는 제 합창인생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니까요.”

담백한 전언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은 뿌듯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20년간 ‘한국적·현대적·세계적인 합창단’을 목표로 인천시립합창단을 이끌어 온 윤학원(77)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오는 30일 퇴임공연을 앞두고 전한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윤 감독은 1995년 내홍으로 해체, 6개월 만에 재창단을 앞둔 인천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자 제안을 수락하면서 시립합창단과 연을 맺었다. 이미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 대우합창단과 서울레이디스싱어즈를 맡아 그 실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던 그였지만 ‘인천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윤 감독은 “그즈음 활발한 해외 활동 속에서도 ‘세계에 감동을 줄 수 있는 한국 합창음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나는 ‘전임작곡가’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인천시립합창단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시립합창단원들과의 ‘악명 높은’ 일대일 연습으로 합창의 기틀을 닦은 그는 다이내믹한 공연 구성과 연주력으로 단시간 내에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인천시립합창단의 역량은 세계 무대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1997년 벨기에에서 열린 ‘IFCM 창립 15주년 기념 세계 합창제’에서는 3천여 명의 지휘자들이 세 번이나 기립해 찬사를 보냈고, 1999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합창 심포지엄 초청연주’와 유럽 순회연주, 2005년 미국 4개 도시 순회연주도 손꼽는 성과다.

특히 2009년 미국 ACDA 초청공연에서 준비한 세 곡 중 첫 곡이 끝나자마자 수천 명의 관객이 기립해 보낸 환호와 박수는 달라진 한국 합창의 위상을 대내외에 증명했다.

윤 감독은 “지난 시간 동안 인천시립합창단은 ‘세계 최고의 무대는 모두 섰다’할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했다”며 “무엇보다 세계 무대 한가운데서도 ‘우리의 합창음악’으로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처럼 그는 인천시립합창단과 함께한 시간 동안 우효원 인천시립합창단 전임작곡가와 같은 젊은 작곡가들이 한국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한국 합창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다.

덕분에 ‘메나리’, ‘8소성’, ‘아! 대한민국’, ‘끄레오’ 등 한국적 어법을 지닌 새로운 합창곡들이 탄생했고, 윤 감독은 그 전까지만 해도 온전히 외국 합창음악에만 의존하던 합창콘텐츠를 한국화한 업적 또한 일구게 됐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가 바하를 죽어라 연습해도 독일 사람의 감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며 “한국이 만든 합창곡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지금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고 벅찬 감회를 표현하기도 했다.

시립합창단 퇴임 후에도 윤 감독은 후학 양성을 위한 ‘코러스 센터’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코러스 센터는 윤 감독이 15년 전 설립한 아카데미로 합창 작곡가와 지휘자, 성악가들을 키워 내는 합창인재 양성소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 32개 지역에서 활동 중인 ‘CTS소년소녀합창단’과 이미 수년째 운영해 온 ‘윤학원 코러스’ 활동도 지속해 나갈 생각이다.

인터뷰 말미, 윤 감독은 “참 힘든 여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합창단이 세계적 합창단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 준 단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언제나 가득 찬 객석으로 응원을 해 주신 인천시민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시립합창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의 당부도 함께 전했다.

윤학원 감독이 시립합창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준비한 마지막 공연은 30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윤 감독, 시립합창단과 함께한 20년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계획으로 ‘오! 인천!’, ‘키리에’, ‘가라 모세’ 등 합창단의 베스트 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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