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우리 사회는 지금 커다란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건전한 중산층의 형성도 주춤한 상태이고,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서구식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것에 반해 우리의 실제 생활은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서 기존의 가치체계와 규범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상식과 비상식이 혼재돼 있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경제 및 사회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가져왔고, 1990년대에 들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산계층이 두텁게 형성돼 시민사회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너무 각박해져 가고 있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경제가 침체돼서 그런 것인지, 인구가 늘어나서 그런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노출돼서인지, 국가 정치력 부재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라의 큰 어른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의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이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란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구조화시킨 집단으로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구성체이다.

그리고 그 사회가 형성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고 관습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고착됐다.

인류가 출발한 후 정착 사회가 시작되고 잉여생산이 가능해지자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 분화되기 시작했고 지배구조가 결정됐다. 씨족과 부족사회를 거쳐 왕조사회가 등장하고 생산자를 피지배계급으로 하는 지배계급이 생겨난 것도 이로부터 기원한다.

전통사회에서도 무수히 많은 왕조가 교체되고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체제 내 운영방식의 개선에 있었지 체제 자체의 변혁은 아니었다. 고려 귀족사회에서 조선의 양반사회로 변화되기까지 근 500년의 시간을 소요했지만, 그렇다고 귀족사회의 틀을 깬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민본정치를 외치고 있었다. 상평창 의창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구휼정치를 표방했고, 부역과 세금 감면정책을 수시로 단행해서 성군임을 보여 주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제도적 조치들은 왕조와 지배계층의 안정을 위한 조처로 이해될 뿐, 실제에 있어서는 일과성 미봉책에 불과했다.

정치권은 국민을 놓고 매번 실험 중에 있다. 10년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됐어도 변하지 않는 건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구호였다.

그들의 정치 양상은 참으로 다양해서 서로 차이가 나는 정치 성향을 어느 쪽의 수준이 더 높고 낮은지 분간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또 하나의 척도로써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그러나 정파 간의 대립은 그토록 혐오했던 조선시대 망국적 당쟁이 다시 부활한 듯하고, 국민을 이끌어 갈 리더십도, 민생을 돌보는 정책적 대안도 부재해 보인다. 합리적 사고는 실종되고 그저 기득권만 사수하면 되는 듯한 모습이 오늘의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지에 고민해야 하고, 우리의 풍토와 문화체계에 걸맞은 합리성이 무엇인지를 찾아야만 한다.

 거대 담론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를 둘러싸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찬반 양론과 야유와 고성에서 벗어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들이 모색돼야 하고,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져 가고 있는 원인도 규명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습속이나 관습에서부터 정치·경제·교육·복지 등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잣대를 수정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희망이 있는 내일은 진정 경제력의 신장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인성을 회복하고 명분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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