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만추의 계절인 요즈음, 각 방송국에서는 한국기행, 내 고향 스페셜, 6시 내 고향, 현장 르포 및 여러 생방송을 통해 앞다퉈 국내 전 지역의 갯마을을 자세하고도 정감 넘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요사이 눈길을 끄는 것은 망둥이 낚시다. 망둥이는 망둑어라고도 불리며 망둑엇과의 바닷물고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사실 나도 TV 자막에 망둑어라고 표시돼 망둥이라는 말, 그 자체를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다.

확인해 본 결과 망둥이는 농어목 망둑엇과와 망둑엇과에 속하는 물고기의 일반적인 명칭이며, 한국에 알려져 있는 종류가 42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거의 모두 가을철 망둥이 낚시질의 아련한 추억과 즐거움을 갖고 있다. 대나무에 긴 줄을 걸어 낚싯봉과 바늘을 매달고 목에 구두닦이 도구 비슷한 낚시통을 두르면 준비 끝이다.

그리곤 지금의 경인선 종착역인 인천역(옛 하인천) 뒤편 바닷가에는 큰 어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생선 자투리나 내장을 거저 얻어 낚시통에 넣고 월미도 앞바다로 나간다. 밀물에 고기가 잘 낚이므로 허리쯤 들어오는 물이 차오를 때부터 시작한다.

 물이 들어올수록 뒤로 후퇴하면서 망둥이를 낚게 되는 방법을 썼다. 또는 인천지역의 합판 제조업체나 대형 제재소에서 만석동 바닷가 어귀에 저장해 놓은 원목을 타고 낚시할 수도 있었는데 원목이 빙그르 돌게 되면 바다에 빠질 염려가 큰 데다가, 곧 원목이 다시 모일 경우 바로 머리 위로 원목이 막혀 있는 상황이 돼 빠져나오기 어려워져 적지 않은 어린애들이 희생당하기도 했다.

조수가 가장 낮은 음력 매달 초여드레와 스무사흘의 ‘조금’ 때에는 어른들이 바지락을 캐러 월미도 앞바다로 나갔다. 지금이야 유원지가 들어서 있지만, 당시에는 드넓은 개펄뿐이었다.

어른들이 호미로 조개를 잡아 펄을 닦아 마포 자루에 넣는 동안(아니 잡는다는 표현보다 너무나 많아 그저 쓸어 담는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우리 어린애들은 몇 조를 만들어 큰 웅덩이를 하나씩 맡았다.

갯벌에는 드문드문 큰 돌들이 있었는데 그 밑에는 돌 크기만큼의 웅덩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우리는 각자 준비해 간 바가지로 웅덩이의 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어른들이 조개를 가득 담은 자루를 머리에 이을쯤이면 우리도 물을 다 퍼낸 웅덩이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새우, 망둥이, 꽃게, 소라 등을 나눠 갖고 귀가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틈이 날 땐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을 쪼아 먹어 배고픔을 면했는데, 당시 도구가 없는지라 부근의 적당한 돌멩이를 주워 굴 위의 넓은 부분을 한 번에 내리치는 기법도 배웠다.

지금도 어쩌다 바닷가에서 이 실력을 보여 주며 떨어진 굴 껍데기로 굴을 앞뒤로 파내 보이면 주위 분들이 감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펄에서 물이 들어올 때에는 앞으로도 서서히 들어오지만 동시에 수로 같은 깊은 구덩이인 골을 따라 먼저 들어오게 된다.

즉, 우리 뒤편에 있는 골에 먼저 물이 차기 때문에 만약 수로 역할을 하는 골이 우리 키보다 깊을 때 반드시 수영해야만 건너올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옛 바닷가 소년들이 오늘날의 수영 실력을 갖추게 된 원인과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요즈음 연안부두나 만석부두에서 일인당 3만~4만 원 정도면 낚싯배를 타고 나가 망둥이 낚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망둥이 낚시철이 되면 가족이나 서울의 친지들을 불러서 함께 인천 앞바다로 나가 제법 큰놈을 잡을 때면 ‘원산 망둥이!’라고 소리치며 지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전혀 그런 즐거움을 계획조차 못하고 지낸 것도 사실이다.

늦은 밤의 방영을 통해서나마 망둥이 잡으며 즐거워하는 화면을 보는 것도 저편의 추억을 가진 사람만의 행복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번 계절도 그냥 내년을 기약하고 마음속으로라도 가을 바닷가 정취에 흠뻑 빠져 보며 깊은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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