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기호일보 독자위원회 위원장

 2015년 세출예산의 ⅓에 해당하는 100조 원 이상이 사회복지 관련 예산이라고 한다. 한 해 1억 원을 손에 만져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100조 원이라고 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도 나지 않는다.

과거 개발 이념에 함몰돼 있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복지 관련 예산이 100조 원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들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OECD 34개국 중에서 사회안전망을 갖춘 여부나 국민총생산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 국민 1인당 복지예산비율 등을 통계로 제시하면서 우리나라가 예산 측면에서도 선진국에 비교해 후진국이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복지문제의 해결은 결국 돈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매년 국가의 복지예산이 증가해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혜택을 본다는 복지체감도는 생각보다 낮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돈은 많이 늘었는데도 만족도는 생각보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복지예산이 1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만족도는 올라가지 못하고 현장에서는 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칠까? 어떤 전문가는 복지 문제를 돈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가령 복지예산을 500조 원 혹은 1천조 원으로 편성해도 복지만족도가 급등하는 것도 아니고, 가난이나 빈곤의 문제가 절대로 해소될 수 없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땜질식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전달 체계 하에서 대부분의 복지제도와 방법이 실패했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압축적 경제성장을 하면서 누적된 복지 문제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과거 선진국에서 시행해 온 복지제도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고, 보다 창의적이고 우리의 경제 현실에 들어맞는 복지제도를 창조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세 모녀가 체납된 공과금과 임대료를 모아놓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 발생해 온 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적이 있다.

국가가 법적인 복지 전달체계를 아무리 갖춰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세 모녀의 경우처럼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어느 연구자료에 따르면 국가가 공식적인 기초생활대상자로 지정해 기초생활급여를 지급해 주는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하면서 그보다 더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결국 우리의 복지제도가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이고, 그 결함의 요지는 창조성을 상실한 복지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 논쟁을 하고 있는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의 모든 복지제도의 핵심은 무상인가, 보편인가 하는 전통적인 이론의 답습에 있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창조적인 제도는 별로 없다.

 이제 무상이라는 복지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영국의 복지역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대안을 연구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헌법에는 사회복지의 이념을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최저생활을 보장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갖도록 한다고 돼 있다.

 모든 복지를 국가의 돈으로 무상으로 제공하면 그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모를 리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복지제도는 가난과 빈곤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수단이므로, 공동체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경제력에 비춰 보면 무상복지제도는 확대하지 말고 대폭 축소해야 한다.

따라서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필요한 복지를 국가에 청구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을 갖추는 창조적 발상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야기하는 사회적·경제적 위험과 구조를 제거하고, 주거, 질병, 교육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포괄복지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나는 결혼해 25년이 지난 금년까지 도대체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지출한 경제적 손실은 엄청난 것이었다.

25년 전 내가 결혼할 당시에 공동체에서 적정한 주거를 영구 임대해 줬다면 그 많은 지출은 생산적으로 재투자됐을 것이고, 노후에 국가에 의존할 필요성도 없어졌을 것이다.

무상도 좋고 보편도 좋지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복지를 미래를 대비해 포괄적으로 지원해 주는 포괄복지만큼 효과적인 제도는 없을 것이다.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의 발상의 전환과 인식의 변화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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