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언젠가 세계 3대 미항이라 일컫는 이탈리아 나폴리가 악취로 관광객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거리에 쓰레기가 넘치기 때문이었는데, 5년도 넘은 소식이라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쓰레기 반입을 반대하는 매립장 주민들의 시위와 관계있었다.

이후 나폴리에서 쓰레기 처리가 원활해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미항의 위상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나폴리시의 쓰레기 정책을 바꾸게 했으리라 추측한다.

일회용품 천국인 미국은 온갖 쓰레기를 커다란 비닐봉투에 한꺼번에 담아 버린다는데, 그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땅이 넓으니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 옮겨 매립하거나 소각할까? 땅이 편평하고 인구가 조밀한 유럽을 보자. 도시 주변에 작은 산봉우리가 이따금 올라온다.

나무가 울창한 그 산은 매립이 종료된 과거의 쓰레기처리장이었다. 독일은 흙을 충분히 덮고 30년 가까이 나무를 심어 관리한 뒤 시민에게 공원으로 조심스레 개방한다고 하니, 매립이 끝나자마자 공원으로 개발하는 우리와 다르다.

축축한 음식쓰레기가 생활쓰레기 매립장에 마구 매립되던 시절, 매립장의 악취는 주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줬다.

1995년 6월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쓰레기를 마지막으로 매립한 서울 난지도는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개장돼 가을이면 억새축제로 많은 구경꾼을 끌어들이지만 쓰레기를 매립하던 시절, 접근이 불가능했다.

1995년 이후 흙을 두툼하게 덮은 위에 다시 고무판을 깔아 억새밭을 조성한 난지도는 지금도 매립된 공간에서 매탄가스를 추출한다. 그러자 악취가 사라졌다.

인천시 서구 경서동의 수도권 생활쓰레기 매립장은 음식쓰레기가 배제돼 매립된다. 쓰레기가 트럭에서 쏟아지면 즉시 흙으로 덮는 까닭에 악취는 난지도 시절보다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는 악취는 주변 지역에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안긴다.

난지도보다 낫다는 평가는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당장 “난지도보다 나아졌다고? 그러면 그 쓰레기, 댁의 지역에 묻으시오!”라는 반응이 나올 게 틀림없다. 매립 종료를 기다리는 주민들은 매립공간이 남았든 악취가 줄었든 관계없이 매립기한을 연장하는 걸 동의할 리 없다.

경서동 주민들이 일찍이 음식쓰레기 반입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음식쓰레기를 퇴비나 사료로 활용했을 리 없다. 식당이나 식품회사에서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 애썼을 리 없다.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의 반입을 마냥 받아들였다면 지금처럼 전국의 지자체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할 리 없다.

쓰레기 소각장에 태울 쓰레기가 적어 타 지방의 쓰레기까지 받을 리 없다. 그 뿐인가. 애초 주민들이 쓰레기 소각장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최악의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의 배출 농도가 지금처럼 낮아졌을 리 없다.

내 집 쓰레기의 처리를 문간방 셋집에 떠넘긴다면 나는 쓰레기 줄이려는 생각을 갖지 않을 텐데, 세 들어 사는 이는 무척 억울할 게 틀림없다. 한 국가의 핵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로 옮긴다면 부자 나라는 핵발전소 가동의 부담을 느끼지 않겠지만 그 쓰레기를 끌어안아야 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부자 나라의 국민들은 전기를 펑펑 쓰면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핵 쓰레기가 들어올 때마다 분노에 일그러져야 한다. 정의롭지 않다.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수도권 생활쓰레기 매립장으로 20년 가까이 고통을 강요받은 서구 경서동의 주민들이 매립장 기한 연장을 반대하는 주장과 행동은 도덕적으로 타당하다. 버릴 곳이 남의 지역에 있으므로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려 노력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서동의 생활쓰레기 매립장 기한 연장 요구는 정의롭지 않다.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쓰레기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발생 장소에서 처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언명령이 그렇다.

이제까지 정의롭지 못했던 서울시와 경기도는 서둘러 지역 쓰레기를 처분할 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수도권 생활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곳은 유사 이전부터 아름답고 풍요로운 갯벌이었다. 인구 300만의 도시,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더는 짓밟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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