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면서 우리나라는 13개의 FTA를 맺고, 체결국가는 50개국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에서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국이나 EU와의 FTA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중 FTA가 침체된 국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관세 철폐라는 국가 간 경제행위는 양 국가에 기회로도 작용하지만 어느 한쪽에는 자칫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 장벽을 철폐하고 넓고 거대한 길을 열었다는 것은 위험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인 것만은 틀림없다.

도로의 기능과 가치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로마인은 도로를 건설하는 장소와 방법, 이를 오래 유지하는 방식 등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집요함과 끈기까지 더해져 건설된 수백 마일의 로마 도로는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유지되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자동차가 달리는 아피아 가도는 로마인이 건설한 대표적인 로마가도에 해당한다. 반면에 중국의 진시황은 당시 서북쪽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해 10여 년에 걸쳐 만리장성을 쌓았다.

여기에는 수십만 명의 군사와 100여만 명의 부역민과 죄수들이 각 지역에서 강제 동원됐으며 이로 인해 결국 진나라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고 말았다. 아무리 만리장성이 현재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하더라도 이곳은 당시 민중들의 피눈물과 희생을 담보로 한 처절하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도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고 성은 물러서서 지키기 위한 공간이다. 로마는 돌을 잘라서 만든 벽돌로 마차가 다니는 길을 만들었지만 중국은 동일한 재료와 기술로 장성을 세웠다.

도로는 전쟁에서 쌍방 통행을 가능하게 해 적의 공격에 직면할 위험도 있지만 이러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하지만 성을 통해서는 정체된 상태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오로지 현상 유지에 매달리게 될 뿐이다. 도로가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면 성은 폐쇄적이고 자폐적이다.

 도로는 갈등과 혼란을 유발시키기는 측면도 있지만 만남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더불어 다양성과 열린 세계를 추구한다. 반면에 성은 안전과 질서를 확보하는 데 효율적이지만 고립과 단절을 불러일으키고 조직을 획일화시킨다.

이와 함께 도로가 투명하고 소통지향적인 속성을 지니는 데 비해 성은 불투명하고 단절적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도로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동에 민첩하게 대응하지만 성은 변화에 대한 인식이 무디고 변동에 대한 적응에 무기력하다.

유연성과 탄력성은 생존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런 특성은 가변적인 사태에 대처하고 불규칙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경직되고 경색된 상태로는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집단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 한중 FTA 체결이 정치·경제·안보적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국을 극복하는 데에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역량도 요구된다. 중국과 인접한 국가 가운데 용광로 같은 중화문화에 대해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나라는 조선왕조밖에 없었다.

조선이 중국의 붉은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유교나 불교를 비롯해 거대한 중국 문화를 수용, 섬세하고 소박하며 세련된 흰색 문화로 편집하고 가공해 재창조해 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수천 년간 중국의 그늘에서 힘들게 숨죽이며 살아오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생산 능력에 기인한다.

중국과의 사이에 FTA로 만들어진 도로는 경제적 재화가 오가는 물류의 통로만이 아니라 문화적 교류의 통로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번영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중국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돼야 한다. 물론 그 기회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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