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로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세상에 난 지 3일 만에 새가 돼 날아갔다고 한다. 아버지 고향, 그러니까 내 친가였던 마을은 오지 산골이다. 소달구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산길을 한참 올라가면 매복해 있는 진지처럼 납작 엎드린 20여 호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첫아이를 낳았다.

 서울 계신 아버지는 당신 첫아들이 태어났다는 전보를 받고 곧장 내려오셨다. 마을을 싸고 있는 앞뒤 산에는 소나무 숲이 청청했다. 푸른 솔의 정기를 받아서 기개 있는 대장부가 되라며 ‘일송’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아기는 파상풍으로 아버지가 도착하기 전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게 위 바수걸이에 뚜껑 덮은 작은 항아리를 얹고 오촌 당숙이 앞산 넘어 어딘가에 묻고 왔다 한다. 방문 열고 내다볼까봐 산모 몸에 바람 들면 산후풍으로 평생 고생한다고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와 큰집 형님이 만류해도 기어코 건너편 산을 넘어가는 지게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퉁퉁 부은 얼굴로 눈물바람을 하셨다 한다.

노환으로 오래 병환 중이던 어머니가 기력이 좀 회복돼 바람도 쐴 겸 나들이를 갔다. 민속박물관처럼 꾸며 놓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전시돼 있는 옛날 생활용품이며 농기구를 둘러보며 커피를 마셨다.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심신이 많이 쇠약한 상태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많아지셨는데, 지게에 바수걸이를 올리고 진달래꽃을 가득 담은 항아리를 얹어 놓은 것을 보더니 갑자기 우셨다. 당황한 우리는 어머니를 진정시키려고 모시고 나가려 하니까 지게 다리를 붙잡고 주저앉으셨다.

“와 여기 있노. 니가 와 여기 있노.”

뜬금없는 어머니 모습에 치매가 왔나 모두들 당황스러웠다. 어렁어렁 꽃다발 속에서 우리 일송이가 웃고 있다며 엄마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며 횡설수설하셨고, 아버지는 정신 나간 소리한다고 화를 내시더니 어머니 얼굴을 감싸고는 우리 보고 모두 비키라고 하신다.

멀찍이 떨어져 동정을 살피며 보고 있는데 어머니를 일으켜 세운 아버지가 바수걸이를 잡고 어머니 손을 잡아끌었다. 어머니는 바수걸이에 몸을 의지한 채 항아리를 쓰다듬으며 아기를 재우듯이 또닥또닥 쓰다듬고 무슨 말인지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농사일을 해 본 적 없는 어머니에게 바수걸이가 얹힌 지게는 첫아이를 묻으러 가는 꽃상여 같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지주 집 외딸로 곱게만 자라서 세상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한지라 감성이 여렸다. 팔순을 넘긴 세월을 살아오셨는데도 여전히 소녀 같아 며느리를 포함한 중년의 자식들이 어머니 흉을 보기도 하는 천생 여자인 할머니다.

가슴에 묻은 첫아이의 죽음은 어머니 마음을 평생 애절하게 했었나 보다.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라 두어 번 지나가듯 이야기해서, 예전엔 신생아 사망률이 높았잖아요. 듣는 우리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앞산 올라 어디쯤인가에 내려진 아들의 안식처를 마음으로 더듬으며 푸른 녹이 나도록 묻어 둔 어머니 가슴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어머니의 처연한 가슴 이야기를 들어드렸어야 했는데 말문을 닫게 했으니 뜨거운 물에 덴 것처럼 가슴이 아린다.

저녁 무렵 그 바수걸이에 한 짐 가득 솔가리를 긁어서 만든 땔감을 지고 마을로 내려오는 일꾼들은 진달래 꽃다발을 한 무더기씩 꽂아서 봄을 날라 왔다.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하는 어머니에게 건네진 진달래꽃은 앞산 어디쯤에 묻힌 아들의 재롱이 피어나 있는 것 같아 뒤꼍 굴뚝 옆에서 자주 우셨다고 한다. 하늘만 빠끔한 산골에서 시집살이 서러움까지 겹쳐져 죽은 아이 생각이 더 간절했다 하셨다.

치매 전조가 아닌가 걱정했던 우리들을 앉혀 놓고 어머니는 가슴속 이야기를 다 꺼내놓으셨다. 어머니의 마음속 바수걸이에 업혀서 한나절 눈부시게 웃다가 꽃잎 날리며 떠나간 아들의 영혼을 이제는 내려놓게 도와드려야겠다. 몸 불편한 어머니를 모신 한나절의 외출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한순간에 치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여든넷 어머니의 바수걸이에 환한 웃음이 담겨져서 심약해진 어머니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고 여생을 보내시다가 아들과 조우했으면 한다. 우리 마음도 가볍고 어머니 남은 시간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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