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인문학 강좌가 늘어나고 이구동성으로 인문정신의 부흥을 말하지만 현실에서의 적용은 그 진정성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연일 신문기사나 방송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건·사고는 대다수가 사회공동체의 기본적 의리나 도덕이 무너진 삐뚤어지고 모순된 면을 보여 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인문학(humanities)의 사전적 정의는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

그 어원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원칙으로 삼은 라틴어 ‘휴마니타스’(humanitas:humanity)로부터 생성돼 일반 교양교육(general and liberal education)의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고, 고전교육(classical education)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것이 실용과 시장경쟁력이고, 교육의 경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또 인터넷이나 SNS가 활성화되고 물질적 풍요 속에 어려운 내용의 책보다는 쉽고, 가볍고, 빠르고, 편리한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철학적 사유나 고전 읽기는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고전(古典)의 의미를 파악하고 수용하는 자세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사회 전반의 교양교육의 기초는 허술해지고, 사회구성원의 사고(思考)는 얕고 말초적인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공동체의 기본적인 도리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정체성도 없는 사회는 삭막하게 변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자유교양경시대회’라는 이름으로 고전(古典) 읽기 경시대회를 치렀던 기억이 있다. 이 대회는 「삼국유사」, 「구운몽」, 「해동명신전」 등 학년별로 난이도를 조정한 고전도서 목록이 선정돼 학교별·시도별·전국별로 교양과 지식을 겨룬 것으로 학교의 명예까지 드높이는 기회였다.

그러다 보니 읽기 싫어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 그 덕에 동서양의 고전을 곁에 둘 수 있었고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돌이켜 생각하면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아울러 국민들의 교양교육을 장려했던 분위기에서 계획됐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당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회적 흐름이나 정책적인 면을 두고 호불호(好不好)의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인상 깊었던 추억의 시간이 됐다.

아마 지금도 이와 유사한 교양교육이 각급 학교 교과과정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대학입시라는 무거운 장벽 때문에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 같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에 읽었던 여러 책들 중 「해동명신전」 한 권이 책장에 꽂혀 있다. 별달리 신경을 써서 챙겼던 것은 아니고 읽었던 것을 가끔 다시 꺼내 읽곤 하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이리저리 펼쳐보니, 책의 규모도 작은 문고판으로 발행일이 1973년 초판의, 1974년 재판본인데 가격이 300원이라 요즘 책값과 비교하면 30배는 차이가 난다.

「해동명신전」은 조선시대 인조와 효종 때의 문신 김육이 지은 것으로 그는 대사헌,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거쳤고 공납의 폐해를 곡식과 베로 대신하는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는 등 경제정책에 뛰어난 식견을 가졌던 인물이다.

내용은 신라 설총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 인물 301명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수록했는데, 이 번역서에서는 그 중 33명을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

원본은 목판본 9권 9책으로 구성돼 있는데, 당시 정계의 미묘한 정세 때문인지 저자의 이름도 서문도 발문도 없이 저자 사후 38년이 지난 숙종 22년(1696)에 비로소 간행됐고, 1914년 조선고서간행회를 통해 출판되기도 했다.

인천은 201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책의 수도’로 선정돼 도서진흥운동을 위한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5년 ‘책의 수도’ 인천에서의 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인천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삶의 지표를 발견하고 그 진정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외규장각과 마니산 사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고금상정예문’과 ‘팔만대장경’을 조판할 수 있었던 역사도시 인천을 알리는 기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 바탕이 된 ‘고전 읽기’는 ‘책의 수도’ 인천을 알리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것으로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