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지역사회’와 ‘지역정치’의 개념이 날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중앙정치가 중심이었던 지난 40년 전에 비해 국가라는 큰 그림 속에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자치에 기반한 정치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방자치의 핵심인 ‘재정’ 분야의 지방 권한 이양이 더딘데다, 자치구와 기초의회 폐지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앞으로의 40년은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에 강력한 도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본보는 인천지역 일간지로 자리매김해 왔던 창사 40주년을 맞아 지난 40년과 향후 40년이란 시간 속에 인천지역 정치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보고 인천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40년 전 인천의 정치지형

   
 

인천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정치·지리·경제·인문의 중심이며 현실적으로 수도권을 등에 업고 발전과 도약을 맡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역이다.

과거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역사를 보면 한반도를 지배한 세력(통일세력)은 서울과 인천으로 이어지는 한강유역을 중요하게 다뤄 왔다. 인천지역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과 지리적 중심지로 해운을 이용해 한반도로 들어가기 위한 중심 입구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항을 통해 가장 먼저 중국 대륙과 서양 문물을 전국으로 전파한 한국 근대사의 산실로, 인천 정치사 역시 전국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0년대는 제4공화국으로 박정희 유신정부 시절이었다.

이 같은 엄혹한 상황에서 1972년 2월 시행된 제9대 국회의원 선거의 특징은 무소속 입후보가 가능했으며 지금과 달리 중선거구제로 1개 선거구에서 2인을 선출하는 구조였다. 또 철저히 공영제로 이뤄진 선거운동 속에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매우 낮았다.

당시 인천지역의 표심은 비교적 중립을 유지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경기 제1지역구였던 인천에서는 여당인 민주공화당, 야당인 신민당 소속 후보자가 각각 승리했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신민당 후보자가 각각 당선됐는데 9~10대 국회의원은 유승원, 김은하 전 의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한 제5공화국 시절에도 인천지역 여야 세력은 대등한 기조를 유지했다.

5공 출범 첫 국회의원 선거인 제11대 선거에서 1선거구인 인천 남·중구 선거구에서는 민주한국당 김은하, 민주정의당 맹은재가 각각 승리했다. 제2선거구인 북·동구 선거구에서도 민주한국당 정정훈, 민주정의당 김숙현이 각각 승리해 여야가 2대 2 구조를 이어갔다.

#지방자치 근간, 인천시의회 변천사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70년대는 지방자치의 긴 휴지기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은 한국 지방자치사의 방향을 바꿔 놓은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로 그해 5월 16일 오후 8시를 기해 모든 정치활동 금지와 국회 및 지방의회가 해산됐다. 이로써 1960년 12월 27일 구성됐던 당시 제3대 인천시의회는 125일간의 최단명 시의회로 인천 정치사에 기록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방정치 암흑기를 거쳐 지방의회가 인천지역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시대를 종식하는 의미를 지닌 1987년 6·29선언에 따라 지방자치의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1989년 12월 19일 당시 여야 4당은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면서 1990년 6월 30일 이내에 지방의회 의원선거를 실시키로 했지만 1차례 연기된 끝에 1991년 6월 1일 대통령 공고 제11호로 6월 20일 인천직할시의회 의원선거를 실시하게 됐다.

   
 

당시 인천은 10년 전 직할시로 승격 이후 경기도의 감독을 벗어나 중앙정부의 감독을 받으면서 행정 이원화에 따른 불편을 덜고 행정 신속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1991년 6월 시의원 선거는 시민의 대표가 시정에 직접 참여해 지방정치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 가능성을 여는 역사적 출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 오랫동안 이어진 중앙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과 좌절을 극복하는 반작용으로 지방정치에 대한 갈망도 커지고 있었다. 군부권력과 공생해 권력을 독식해 왔던 소수 실력자들로 이뤄진 기득권 구조를 붕괴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해 6월 1일 선거일 공고와 후보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6월 6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마무리하고 6월 20일 투·개표를 거쳐 당선을 확정했다.

제1대 인천직할시의원 정수는 모두 27석이었다. 여기에는 모두 87명의 후보자가 등록, 3대 1이 조금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정당별로 보면 당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이 27곳 선거구 모두 후보를 등록했으며 신민당이 10곳, 민주당

   
 
이 11곳에서 후보를 배출했다. 민중당은 2곳에 후보를 냈으며 37명의 무소속 후보가 등록했다.

선거 결과 총 유권자 124만3천72명 중 53.9%인 67만287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민주자유당이 20석을 차지했고 신민당 1석, 민주당 3석, 무소속 3석으로 집권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같은 해 7월 8일 시의회 의사당에서 제1대 인천직할시의회의 역사적 개원식을 갖고 지방정치 재출범을 알렸다. 사실상 백지 상태에서 출범한 1대 시의회는 단체장을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상황에도 의욕과 열정을 불태워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임기 4년의 시의원은 시민의 대표로 조례 제·개정, 예산안 심의·확정,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 등 중요 시정을 결정하는 직무를 행사한다.

이 같은 역사 속에 지난 6·4 지방선거 결과 당선된 35명(지역구 31석, 비례 4석)으로 구성된 제7대 시의회가 지난 7월 출범, 활발한 지방의정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중앙정부의 거센 도전을 받는 지방정치
앞으로 40년 인천 정치의 미래는 어떨까. 지방정치 여건은 40여 년의 역사 속에 점차 성숙됐다는 평이지만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자치구·자치기초의회 폐지를 정책적으로 펼치려는 움직임에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재정권을 쉽게 내놓지 않으면서 지방자치가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최근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 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했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사무 및 재정 개편이다. 그렇지만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 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추진하는 ‘특·광역시 자치군·구의 지위 및 기능 개편’안을 보면 현행 특·광역시 군·구의회를 폐지하고 행정군·구로 개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 계획에 대해 군사정권 이후 겨우 되살려놓은 지방자치의 근간이 또다시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앙정부의 사업을 위임하는 구조로 재정자립도가 낮고 복지사무까지 받은 지방자치는 지금도 위기상황”이라고 전제하며, “자질 있는 자치단체장들이 많이 배출돼야 중앙정부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는 지방자치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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