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현대사회의 종합적인 산물입니다. 인천과 국가를 위해 현직 국회의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뭉쳐 큰 정치를 해야 합니다.”

1931년생 양띠로 2015년 84세를 맞는 심정구 선광 명예회장은 내리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천지역 대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1950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5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선광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던 1980년 당시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을 맡으면서 정치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심 회장은 인천 지구당 창설멤버로 민정당에 입당했던 당시를 돌아보며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더라”고 회상한다.

그는 “그해 중앙에서 전당대회 이후 인천지역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으로 인천에서 처음으로 지구당 일을 맡아 보게 됐다”며 “당시 인천 인구는 80여만 명에 동회(지금의 동 주민센터)는 70여 곳 정도였는데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나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선거에 나서지 못했다. 지금은 작고한 A씨가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결국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

심 회장은 “한 달 넘도록 지구당을 돌며 정치 기반을 쌓았는데 중간에 A씨로 후보가 바뀌면서 지역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며 “이후 A씨가 병석에 있으면서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심 회장은 1985년 남구갑 선거구에 출마해 제1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심 회장은 “당시 나를 포함해 인천에 모두 4명의 국회의원이 여야 동수로 당선됐다”고 회상한 뒤, “인천 역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움직임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당시 인천지역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인천의 여야 분위기는 지금과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가장 최근에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인천은 모두 12개 선거구에서 여야 의원이 6석씩 나눠 갖는 등 치열한 접전 끝에 여야 동수를 이루고 있다.

   
 
심 회장은 “여야가 이렇게 첨예한 대립을 하지 않았다”며 “12대부터 15대까지 기억을 되돌아보면 가끔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도 하고 가족들과 모임을 갖는 등 인천지역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유대관계가 없다 보니 인천의 현안에 각 국회의원들이 합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심 회장은 현직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갔다. 몸싸움과 막말 등으로 점철된 정치활동으로 정치인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요즘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몹쓸 놈이 됐다”고 운을 뗀 뒤, “공약도 그렇고 각종 약속들도 그렇고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이어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상당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폭언은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충고를 덧붙였다.

4선 의원을 지낸 심 회장은 현재 인천지역 최다선인 5선의 황우여 교육부총리와의 일화도 꺼냈다.

심 회장은 “2000년 이후 인천지역 여야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각자 대화가 너무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황우여 의원이 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다”고 운을 뗐다.

“언젠가 회의를 끝내고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술을 하지 않더라”고 회상한 심 회장은 “그래서 술을 먹지 않을 거면 회의 끝났으니 돌아가라고 면박을 줬더니 잘 마시더라”고 미소지었다.

이어 “그래도 지금 인천지역에서 황 장관은 최다선인 최고 정치인 아닌가”라며 그의 역할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과거 인천정치에 대한 견해를 쏟아내던 심 회장의 눈길은 점차 현대로 향했다.

향후 40년 인천의 발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 회장은 “정치인들은 단편적이고 협소한 생각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전제하며 “인천 출신 국회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모여 인천시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중앙정부와 연결된 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시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고 의견 전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 회장은 “정치라는 것은 현대사회의 종합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면서 “국가를 위해 뭉쳐 그에 준한 큰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심 회장은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견해를 밝혔다. 찬반 여론이 첨예한 ‘뜨거운 감자’에 대한 그의 발언의 핵심은 ‘소신’이었다.

그는 “공무원연금법 개혁은 지금 해야 한다”며 “지금 하지 않으면 재원 부족으로 국가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연금은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뜻 아니겠느냐”며 “국가 재정 문제로 접근해야지 이것을 여야 정쟁의 수단으로 끌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회장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4선 당선을 끝으로 2000년 정계를 떠났다. 그는 ‘그만둘 시기에 잘 마무리했다’고 평했다. 2000년대는 인천 정치 지형이 변화의 바람을 맞이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인천 정치계의 세대교체 시점에 그는 큰 미련 없이 물러났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심 회장은 “상대방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정치는 사회 각 분야 중 가장 포괄적으로 잘 돼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당은 배려하고 야당은 너무 고집부리지 않는 자세로 여야 모두 서로를 이끌어야 올바른 정치”라며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회구조를 인천에서부터 바꿔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심 회장은 “2014년 갑오년은 말띠 해다 보니 역동적이고 격동적인 일들이 너무 많았다”며 “특히 각종 사건·사고 등으로 온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5년은 양의 해인 만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뭉치는 양의 특성을 발휘하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대담=한동식 정경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양광범 기자 ykb@kihoilbo.co.kr
사진=조병석 객원사진기자 cbs@kihoilbo.co.kr

심정구 약력
<학력>
▶1950년 인천고등학교 졸업
▶195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경력>
▶1957년 선광 대표이사 사장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
▶1981년 민주정의당 창당
        민주정의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1984년 민주정의당 중앙위원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초선)
        민주정의당 재정위원장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재선)
▶1990년 국회 재무위원회 간사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3선)
        민주자유당 인천시당 위원장
        민주자유당 당무위원
▶1992~2003년 한국관세사협회 회장 5번 연임
▶1993년 한국·노르웨이 국회의원 친선협회 회장
▶1994년 국회 재무위원회 위원장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4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신한국당 당무위원
▶1997년 한나라당 당무위원
▶2000년 조세재정연구회 회장
▶현 선광 대표이사 부회장
    선광 고문
    선광문화재단 이사장
    선광 명예회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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